교황,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에 저지른 죄악 사죄

2020.05.05 11:11:48

이슬람은 정복지 주민들에게 이슬람교 강요하지 않아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3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괴메레에서 터키의 수도 앙카라까지 300km를 이동하는 날이다.

 

 

나는 오늘도 새벽기도를 알리는 아잔이 들리기 이전에 잠이 깨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울 때에 이슬람은 ‘한 손에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호전적인 종교라고 배웠다. 정말로 이슬람은 코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칼로 죽였는가?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진실을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배운 세계사에도 가짜 뉴스가 섞여 있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은 13세기에 기독교가 십자군 원정에서 패배할 무렵에 이탈리아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가 이슬람을 깎아내리기 위하여 지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슬람은 결코 정복지 주민들에게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가장 확실한 증거로서, 이슬람은 600년 동안이나 그리스를 포함하는 발칸 반도를 지배하였지만 그리스는 지금껏 정교회를 믿고 있다.

 

무력으로 종교를 전파한 쪽은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였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는 아랍 세계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동방교회까지도 공격했는데, 정교회를 믿는 이스탄불 공격을 계기로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갈라지게 되었다.

 

폴란드 출신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희년(서기 2000년)을 맞아 기독교가 지난 2,000년 동안 조장하거나 방조해 온 각종 과오에 대해 시인하고 반성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구체적으로 교황은 십자군 원정 중의 유대인 학살, 종교 재판과 고문, 마녀사냥, 신대륙 정복자들의 원주민 학살 등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교황이 과거에 기독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반성했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행동이다. 이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에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고 십자군 전쟁 등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에 저지른 죄악을 사죄하여 이슬람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6년 11월에 독일 출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슬람 국가인 터키를 3박 4일 방문했다. 교황은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인 블루 모스크를 방문하였는데, 많은 무슬림은 이러한 방문을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 화해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두 종교가 1,500년간 지속한 반목과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의미 있는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교황은 이스탄불에서 정교회 수장인 바르톨로메오 1세가 집전하는 정교회 전례에 참석하였다. 두 종교 지도자는 공동 선언에서 인간 생명 보호와 종교 간 대화, 폭력의 종식과 평화 증진, 생태계 보호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러한 최근의 사건들은 역사 교과서에 실어서 이슬람에 관한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다.

 

동굴 숙소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걸어서 괴레메 버스터미널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시내버스를 타고서 조금 떨어져 있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앙카라로 가는 버스표를 사고 맞이방(대합실)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치통이 심해진 병산은 국제전화로 한국에 있는 치과의사 친구와 통화를 하였다. 치과의사는 손말틀(휴대폰)로 이빨을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면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병산은 입을 벌리고 나는 아픈 이빨 부분을 사진 찍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병산 손말틀로 보내고, 병산은 그 사진을 다시 한국에 있는 치과의사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일종의 원격진료가 이루어진 셈이다. 사진을 검토한 치과의사는 아직 이빨을 뽑을 정도는 아니고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 병산은 8월 12일에나 귀국할 예정이니 아무쪼록 10일 동안을 잘 견디기를 기원할 뿐이다. 병산은 앙카라에 도착하면 치과에 다시 한번 가보아야겠다고 말했다. 여행 중에 아프면 대책이 없는 고생이다.

 

우리는 시설이 좋은 버스를 타고 300km를 4시간 동안 달려서 앙카라로 이동하였다. 버스에서는 안내원이 과자와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 정말로 터키 사람들의 친절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창밖 풍경은 이곳 역시 건조지대임을 알게 한다. 터키의 중부 내륙지방은 위도로 보면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고산지역이어서 지금 여름이어도 덥지 않다. 앙카라도 고도가 1,000m가 훨씬 넘는다. 지금 한국과 유럽은 매우 덥다고 하는데, 우리는 터키에서 고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창밖으로 모래밭이 새하얀 호수가 보인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보니 ‘Lake Tuz’라고 나온다. 유명한 소금호수인데 우리의 순례 일정에는 들어있지 않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이 호수는 여름이 되면 수분이 증발하여 소금 모래밭이 되는데 한해에 1백만 톤의 소금을 생산한다고 나온다. 터키 국민이 1년에 소비하는 소금양의 2/3를 여기서 생산한다고 하니 엄청난 양이다.

 

 

앙카라는 1923년 터키 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수도로 지정되어 행정도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는 왕조를 중단시키고 공화국을 세우면서 오랫동안 수도였던 이스탄불을 떠나 앙카라로 수도를 옮기고 새롭게 터키를 개혁하였다. 2017년 현재 앙카라 인구는 540만이며 이스탄불에 이어 터키 제2의 공업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이다. 앙카라에는 고대 유적 등의 명소가 다른 도시에 견주어 적은 편이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지는 못한다고 한다.

 

 

앙카라에 도착하여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숙소를 찾아갔다. 병산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여 방 2개인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앙카라 대학 근처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형 숙소를 찾아가니 병산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숙소의 조건이 너무 열악하였다. 거실도 너무 작고 조그만 방이 2개 있는데, 밤에는 주인 여자도 여기서 함께 잔다고 한다. 병산은 결정이 빠른 사람이다. 즉시 구글 지도를 확인하더니 로자 씨와 딸은 여기서 자고, 병산과 나는 가까이에 있는 다른 호텔로 가기로 하였다.

 

병산과 나는 근처 호텔로 이동하였다. 대도시 시내라서 그런지 방값이 비싸서 우리는 침대 두 개가 있는 방 하나를 2박 예약하였다. 짐을 내려놓고 치통이 심해진 병산은 구글 지도를 확인하여 근처에 있는 보건소를 찾아냈다. 네 사람이 함께 보건소로 갔는데, 마침 토요일이어서 치과의사는 없고 당직의사만 한 명 있었다. 당직의사는 간단히 진료하고 진통제를 처방해 주면서 월요일 치과의사가 나오니 다시 오라고 한다. 역시나, 터키 사람은 어디서나 친절하다. 이분 역시 치료비는 받지 않았다.

 

 

우리는 모레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러 버스를 타고 앙카라 중앙역으로 갔다. 앙카라역은 웅장한 건물이었다. 서울역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다. 그런데 역 입구에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경찰이 곳곳에서 순찰한다. 가끔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 사건이 국제 뉴스로 보도되는데, 앙카라가 서울처럼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실수로 문제가 발생했다. 기차표를 사려면 여권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내가 여권을 여행 가방에 두고서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여권 사진을 손말틀에 저장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보여주었는데도 담당 직원은 여권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병산에게 내일 혼자 역으로 와서 기차표를 사겠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기차역을 나와서 공원을 지나가다가 소풍 나온 대가족을 만났다. 병산이 전단지를 주니 가장인 듯한 남자가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유창하게 인사를 한다. 이 가장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수입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한국을 잘 안다고 한다. 딸이 네 명이고 손자까지 있는 대가족이다. 우리는 잔디밭에 앉아 그들이 가지고 온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나마 우리는 친구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병산이 배낭에서 커다란 지도를 꺼내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온 후에 앙카라 대학교 앞 식당에서 병산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제법 큰 식당 안에는 교수, 학생, 조교들로 추측되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기는 해도 세속화된 이슬람 국가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상훈 교수 muusim2222@daum.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