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열쇳말로 보는 부산의 민속문화

  • 등록 2020.08.26 11: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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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ㆍ부산광역시 ‘2021 부산민속문화의 해 주제별 조사 보고서(5권) 펴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과 부산광역시(권한대행 행정부시장 변성완)는 ‘2021 부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부산의 특색있는 문화를 조명한 주제별 조사 보고서(모두 5권)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2019년부터 1년여 동안 부산의 전문가 5명이 추진한 조사 연구의 결과물로서,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1. 부산 사람들, 어떤 길로 외부와 소통했나?

     * 바닷길, 육로, 기찻길, 낙동강길 등 길마다 독특한 시대적, 지역적 특색 담겨있어….

 

《길이 만든 부산》(차철욱)은 부산과 외부로 통하는 ‘길’을 매개로 부산의 변화를 바라본 보고서다. 부산은 한반도의 끝이기도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이기도 하다. 경계로서의 부산은 다방면과 소통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길’을 통해 사람, 물건, 문화가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유기적으로 변화해온 부산의 모습을 담았다.

 

  * 부산 영도에 왜 호남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을까?

 

영도에는 호남 중에서도 완도 청산도와 고흥 나로도 사람들이 특히 많이 산다. 이들은 대개 일제강점기부터 발달한 수산업과 해운 항로를 통해 부산에 정착하였다. 1950년대 저인망 어업으로 나로도에서 어획된 수산물은 부산 어시장에서 판매되었는데, 선주들은 어로 준비와 판매망 확보를 위해 부산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먼저 정착한 선주들은 고향 인맥을 통해 고향 사람들을 불러 선원으로 승선시켰고, 선원의 이주는 다시 가족을 동반하였다.

 

2. 국제시장의 변천 과정과 대표 품목을 취급하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다

 

《국제시장》(오세길)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인 국제시장을 탐구한 보고서이다. 75년 역사를 가진 국제시장의 역사, 시장을 이끄는 상인조직인 번영회를 살펴보고, 10개 점포를 중심으로 국제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국제시장에 인접한 부평깡통시장, 만물의 거리, 아리랑거리, 신창상가(케네디시장)를 소개하였다.

 

 

  * 국제시장을 대표하는 품목은 무엇?

 

국제시장 번영회에서 펴낸 1982년, 1990년, 2004년 상가 전화번호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섬유류, 일반 잡화류, 철물ㆍ기계 공구ㆍ전기 용품류, 양품 잡화류, 주방 기구ㆍ칠기 제품류, 건어물ㆍ청과ㆍ기호품류 등 여섯 가지 유형이 국제시장의 대표 품목으로 손꼽힌다. 물론 대표 품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일반 잡화류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가방과 문구류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급부상한 품목은 민예품과 전통 공예품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관광객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깊다.

 

3. 좌천동 자개골목을 지키는 마지막 공방 ‘일호공예’와 자개장인들 탐구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 사람과 공예 기술》(이현주)은 부산의 공예산업을 부흥시켰던 본산지인 좌천동 자개골목의 역사와 흔적을 찾아 탐구한 보고서다. 이 자개골목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공방인 ‘일호공예’와 평생을 자개와 함께 살아온 절삭공 이일환 등 자개골목의 화려했던 명성을 간직한 채 아직도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 남부권 최대의 나전칠기 가구 공급지, 부산 ‘자개골목’을 아십니까?

 

영남 지역에서 ‘나전칠기’하면 대부분 통영을 떠올린다. 조선시대 12공방이 있었던 통영에서 생산되는 나전칠기는 전국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80년대 정부의 산업경제부흥과 수출진흥정책에 맞물려 나전칠기 가구로 남부지방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은 부산 좌천동 자개골목이었다. 자개를 엷게 만드는 섭패, 실처럼 잘라 만드는 절삭, 무늬를 만드는 조각 등의 공방이 150여 집 이상이 촘촘히 들어서서 거리를 형성했을 정도였다. 통영은 인구 규모가 작아 분업화된 기술을 보유한 인력확보에 한계가 있었고, 고급 가구인 나전칠기의 수요층도 많지 않았다. 반면에 동래, 부산, 좌천동은 나전칠기의 자생적 토양의 기초 위에 국제적 해항도시로서 국내외 수요와 운송의 측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에 통영을 포함한 영남권의 나전 공예인력들을 대거 흡수하였다.

 

 

4.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 사람들의 삶과 재첩잡이 변화과정 탐구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잡이》(황경숙)는 부산의 젖줄 낙동강에서 어획되는 식생활 재료인 재첩, 그리고 재첩을 둘러싼 사람들을 주제로 살펴본 본격적인 ‘재첩문화’ 연구서이다. 저자는 낙동강 강변마을을 직접 발로 뛰며 추적해서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80년 동안 진행된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잡이의 변화에 관해 탐구하였다.

 

  * “재칫국 사이소!”, 낙동강 재첩 아지매와 그 재첩국맛을 기억하시나요?

 

외지사람들에 있어 흔히 ‘재첩’하면 부산을 떠올릴 정도로 부산을 대표하는 입맛의 하나로 재첩국을 들 수 있다. 나이가 좀 있는 부산 사람들은 전날 약주를 마셨으면 다음 날 아침 해장으로 꼭 재첩국을 마셨다. 재첩이 간을 이롭게 하고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재첩국의 원료인 재첩은 국산이라 해서 섬진강 재첩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국산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부산 ‘원조’ 재첩의 최대 산지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낙동강 하구로, 이곳 사람들에게 재첩은 곡식이나 다름없었을 정도로 소중했다. 맛도 맛이지만, 이 재첩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재첩을 ‘기수재첩’이라 하며, 민물에 사는 참재첩인 ‘골조개’와 구분된다. 골조개는 비린 맛이 강하고 질겨 낙동강 하구와 부산 경남 사람들은 잘 먹지 않았다.

 

5.  아미동 언덕 위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들여다보다

 

《아미동 이야기: 포개진 삶, 겹쳐진 공간》(우신구)은 부산 서구 산복도로 자락에 있는 아미동 비석마을을 탐구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부산의 역사와 부산의 공간이라는 양면을 조감하기 위해서는 부산의 변두리이자 동전의 뒷면과도 같은 아미동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의 개항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살았던 사람들, 부산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 부산을 둘러싼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시대적 변화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 아미동 비석마을이고, 그 기억과 장소를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남겨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 고향 떠난 사람들의 고향, 아미동 비석마을

 

아미동 비석마을은 고향 떠난 사람들을 대표하는 장소이다. 바다 건너온 일본사람은 땅 아래 묘지에 묻혀있고, 사선(死線)을 넘어온 피란민과 농촌을 떠난 이주민은 좁은 땅 위에 빼곡하게 보금자리를 일구었다.

 

 

아미동 비석마을의 시작은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일본인 공동묘지 구조물에 의지해 임시 주거공간을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천막집과 판잣집으로 얼기설기 지어 살았고, 산업화시대에는 판잣집을 헐고 시멘트 블록집을 지었다. 사람들은 비석을 주택 현관 계단, 석축의 귓돌, 가스통 받침, 생활용품 받침 등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다. 김정하(한국해양대)는 이러한 아미동을 가리켜 “일본인에게는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경계였고, 이주민에게는 농촌에서 도시로 들어서는 경계였으며, 피란민에게는 타향과 고향의 경계”라고 말했다.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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