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뭉게구름 같기도 하고 넘실대는 제주의 푸른 바다빛 같기도 한 산뜻한 표지의 책 한 권이 보름 전 도착했다.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넣은 지 이틀 만에 도착한 책 이름은 《아이러브 미완성(アイラブ未完成)》이다. 책 이름 아래에는 재일작가 김길호 소설집이라고 쓰여있다.

“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단편 소설집 《아이러브 미완성》을 발간했는데 서울에서 구입이 가능하다면 사서 보십시오. 일본에서 보내도 되지만 시일이 걸릴 것 같아서요. 과연 구입이 가능한지 저도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은 지난 5월 1일. 제주 출신의 재일작가인 김길호 선생이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인터넷 연재물인 <김길호의 일본 아리랑(167)>(제주 경제일보 연재)을 읽고 있자니 선생이 제주 방문 중인 듯하여 서울에 올 계획이 없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짧은 일정으로 고향에 갔다가 이미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고는 따끈따끈한 신간 《아이러브 미완성》 소식을 보내왔기에 나는 얼른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넣었다.
주문한 《아이러브 미완성》이 도착했다고 김 선생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졸저를 읽은 감상이 긴장됩니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책을 받았을 때는 바로 읽어야지 했는데 2주가 다 되도록 머리말밖에 읽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소설책을 손에 쥐면 날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는데 이제 소설을 읽을 나이는 아닌가 싶을 만큼 저녁이 되면 피곤이 몰려든다. 사실을 말하자면 낮 동안은 나 역시 밀린 집필로 끙끙대고 있는 터라 저녁밥을 먹고 천천히 ‘읽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책상 앞에 앉으면 여지없이 밀려드는 피곤함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에티오피아에 체류 중인 친구가 보내준 하라르(harar)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시면서 드디어 어젯밤 나는 김 선생이 쓴 334쪽의 《아이러브 미완성》을 완독했다. 책장을 덮자 검은 모래해변이 펼쳐진 제주 삼양해수욕장의 아름다운 일몰이 떠올랐다. 이따금 제주에 갈 때 렌터카를 몰고 지나가던 삼양동이 김 선생의 고향이었고, 그곳에서 그의 노모는 평생 객지로 나간 ‘아들바라기’를 하며 살고 계셨던 것이다.
“얘야, 내가 죽더라도 제발 오지 마라, 죽은 후에 와서 보아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먼 곳에서 비싼 비행기값 주면서 안 와도 좋다. 와서 고생만 할테니까 제발 오지 마라. 나, 하나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겠다. ” - 어머니, 갈 수 없는 집, 135쪽-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 형제들은 모두 삼양 어머니가 살던 집으로 갔다. 형제들이 이렇게 삼양집에 모두 모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진눈깨비에 젖은 상복과 예복들을 갈아입고 구두까지 씻으면서 제각기 살고 있는 곳으로 갈 준비를 하면서 이른 저녁을 같이 했다.” -어머니, 갈 수 없는 집, 177쪽-
《아이러브 미완성》에는 ‘어머니, 갈 수 없는 집’을 포함하여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집행유예, 제주를 품은 이지치 교수, 오사카 하늘 아래서, 홀로 방송국, 이쿠노 카멜레온들, 징검다리, 추도비, 새들의 집이 그것이다. 단편집이라서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더 술술 잘 읽히는 작품부터 읽어나가면 그만이다. 나도 그렇게 이 소설집을 읽었다.
“개인적 일상들이 하나, 둘 나올 때마다 할머니들은 스스로 하는 일에 자신과 긍지를 갖고 또 당당하게 그것을 말하는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배우지 못해서 글을 쓰지도 읽지 못해도 그것을 비관하거나 부끄러움의 실의 속에 결코 빠지지 않았다. 숙명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남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공감을 얻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상의 지혜는 그 어느 강연과 설교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생기발랄한 이러한 삶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일제시대의 기미가요마루를 타고, 해방 후에는 생활고와 4ㆍ3사건을 피해 건너온 그녀들의 일본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현해탄을 건너온 할머니들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김치와 생선을 팔고,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밤늦게까지 얼마 안 되는 돈벌이를 위해서 내직(內職)을 하는 그녀들의 삶의 개척은 숭고했다.”
-‘제주를 품은 이지치 교수’, 77쪽-
“그 당시 오사카 쪽에서 생산되는 물자와 군수품을 동해 쪽으로 운반하기 위해 철도 개설이 필요했다. 후쿠지야마선인데 산과 계곡이 계속되는 지형이라 터널이 필요했다. 특히 이곳은 무코오강이 흐르면서 굴곡이 심한 곳이기 때문에 강변이 할퀴어 나가고 그로 인해 산사태가 빈번해서 긴 터널이 아니드라도 징검다리 같은 터널이 많이 뚫린 곳이었다. 이 공사장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이 투입되었다. 3월 26일 아침 젖어버린 다이나마이트를 건조시키려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말리다가 폭발했던 것이다. 80년 전 조선의 젊은이들이 아깝게 죽은 사고였다. 당시 일제시대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없는 사고라고 일축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정홍영 씨와 곤도 씨는 해마다 사고가 일어난 3월 26일, 현장을 찾아와서 제사를 지냈다.” - ‘추도비’, 289쪽-
소설이란 흔히 “작가의 상상으로 있을 법한 일을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나는 김 선생의 ‘추도비’를 읽으며 꾸며낸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비화(祕話)를 찾아내기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어린 시절 소풍지에서 선생님이 돌 틈 밑에 숨겨둔 보물찾기 종이를 찾아낸 느낌이었다. 단편 ‘추도비’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가운데 추도비 건립에 앞장선 김명곤 회장, 카와세 씨, 우에노 미나코 시인 등은 사실 나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살짝 이름을 바꾸었지만 말이다.
김 선생이 ‘추도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나는 지난해(2024) 4월 12일, 작품 ‘추도비’의 주인공인 김예곤(소설 속에서는 김명곤 회장) 회장을 만나러 효고현 다카라츠카시(兵庫縣 宝塚市)에 간 적이 있다. 김예곤(金禮坤, 91) 회장은 재일동포로 자신의 호(號)를 파란만장(가타카나로 ‘パランマンジャン’)이라고 지을 정도로 삶 자체가 ‘파란만장(波瀾萬丈)’하다.
김 회장의 아버지 김말수 씨는 1920년대 초기 열아홉 살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효고현 타카라츠카시 무코가와(兵庫縣 宝塚市 武庫川)에 정착했다. 부산이 고향인 김 회장의 아버지는 고국에서 조선총독부의 농지개혁으로 토지를 몰수당해 살길이 막막해지자 일본행을 택했고 거기서 악착같이 일하면서 부를 일궜다. 당시 김예곤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대신 사업체를 이어받아 경영하던 형이 갑자기 타계하는 바람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가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김 회장은 채석장과 레미콘회사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기업 '우미야마광업(海山鑛業)'을 맡아 일본 내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
김예곤 회장이 동포사회에 이바지한 큰 공은, 어렵게 일군 부(富)를 동포사회에 아낌없이 썼다는 점이다. 김길호 선생이 단편으로 다룬 ‘추도비’ 건립을 비롯하여 김 회장은 1996년 '타카라츠카시 외국인시민문화교류회' 초대 회장, 1998년 동 교류회와 다카라츠카시 및 국제교류협회 3자 공동사업으로 이문화(異文化) 상호 이해 추진, 2002년 동 교류회와 타카라츠카시 외국인시민 간화회(懇話會) 좌장 등을 맡았고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에는 타카라츠카시 제50주년 기념식전에서 '국제교류공로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기반은 모두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일이며 김예곤 회장은 일본인들과 동포들의 교류를 통해 보다 나은 관계 개선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쏟았다. 나는 그러한 김예곤 회장의 삶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지난해 직접 김예곤 회장댁을 방문했었다. 당시 김 회장 댁을 안내한 이는 김길호 선생과 카와세 씨였다.
그러고 보니 김길호 선생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추앙받고 있는 김예곤 회장의 헌신적인 삶을 소설 ‘추도비’에 녹아낸 것이고 나는 ‘취재 기사’로 소개한 것이니 형식만 다르지, 내용의 본질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취재 기사와 소설은 근본적으로 구성면에서 다르다. 기사를 쓰는 처지에서 보면 ‘소설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취재 기사가 봉지 속에 들어 있는 인스턴트 미소시루(일본에서는 라면스프 봉지만 한 크기의 1회용 된장국을 판매하고 있다.)라면 소설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숙성되도록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진짜 미소(일본 된장)일지도 모른다. 김길호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해왔다. 《아이러브 미완성》에 실린 10편의 단편을 읽어 본다면 나의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재일동포들은 고향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고향의 개념을 ‘유년 시절 스스로가 몇 년간 보냈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이 새겨진 곳이다. 즉, 유년 시절의 지울 수 없는 화석이다.’라고 생각한다.”라고 김 선생은 말했다.
‘지울 수 없는 화석’ 어쩌면 그것은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일지 모른다. 그런 뜻에서 그곳이 좋든 싫든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고향 바라기’를 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김 선생의 작품 속에서만큼은 또렷이 그 편린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살갑다. 김 선생은 이어 말한다.
“모두 고향을 고무풍선처럼 부풀려서 미화시키려 한다.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에 사는 동포들은 이러한 차원에서도 떠나, 몸에 배인 어떤 차별감이 고향이라는 본질적인 개념까지 희석시키고 부정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제2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즉, 고향을 한마디로 그립고 아름다운 곳이어야 한다는 선입감에서 일어난 정서적인 사고(思考) 속의 환상의 고향이다.”
그래서일까? 선생의 작품 속에서는 특별히 아름답거나, 고상한 부류의 사람들이 애시당초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역시 정겹다. 싸구려 조화로 장식한 값싼 호텔의 실내장식 같은 거북스러움이 없다. 나는 그런 정경을 볼 때마다 정지용의 ‘향수’가 생각난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는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국을 떠나 반백 년 일본살이를 하고 있는 김길호 작가, 그가 이번에 새로 펴낸 《아이러브 미완성》은 '아이러브 고향', '아이러브 제주, '아이러브 제2의 고향'으로 바꿔도 무난한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김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 땅에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들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