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의사 의거 제100돌 기념식」 연다

2020.10.27 12:35:04

28일(수) 아침 10시,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일제하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린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제100돌 기념식’이 오는 28일(수) 아침 10시, 부산상공회의소(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이경재) 주관으로 열리며, 코로나19로 참석인원이 축소된 가운데 박삼득 보훈처장을 비롯해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김원웅 광복회장 그리고 출신학교 재학생과 기념사업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올해 기념식은 당초 의거일(9.14)에서 코로나19로 행사를 연기해 진행하는 것으로, 올해 6월에 설립된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가 의거 100돌을 맞아 부산시민과 학생이 참여하는 ‘기념음악회’, ‘특별기획전’도 열어 의사의 뜻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박재혁 의사 주요 공적(공훈록 자료)

 

□ 부산(釜山) 사람으로 부산진보통학교(釜山鎭普通學校)와 부산공립상업학교(釜山公立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부산와사전기회사 전차차장으로 있었고 왜관(倭館)에서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던 중 1917년 6월 주인으로부터 자본금 700원을 얻어 상해로 가서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18년 6월 귀국하였다.

 

□ 박 의사는 보통학교와 상업학교 동창인 동지 최천택(崔天澤)에게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투쟁할 것을 말하고 기회를 노리던 중,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상해로 가서 중국 각지와 싱가폴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는 한편 여러 독립투사들과 교제하였다.

 

□ 1920년 3월에 귀국하였다가 8월에 상해로 가서 김원봉을 만나 군자금 3백 원을 받아 부산경찰서를 파괴하고 그 서장을 사살할 것을 계획하였다. 동년 9월 상순 폭탄을 휴대하고 상해를 떠나 동월 6일 부산에 상륙하였다.

 

□ 박 의사는 14일 낮 2시 30분에 고서 보따리로 위장한 폭탄을 등에 지고 경찰서로 서장을 찾아 서장과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몇 마디 환담을 한 뒤 고서를 꺼내는 척하면서 폭탄을 꺼내 들고 서장을 유창한 일본말로 꾸짖고, 폭탄을 던져 폭발시키니 서장은 부상을 당하고 그도 중상을 입은 채 붙잡혔다.

 

 

□ 박 의사는 모진 악형 끝에 기소되어 1920년 11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 언도를 받고 공소하여 1921년 2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자 다시 상고하여 1921년 3월 31일 경성고등법원에서 다시 사형을 언도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혹독한 고문과 폭탄의 상처로 몹시 신음하다가 폐병까지 생겨 고통이 심했고, “왜적(倭賊)의 손에 욕보지 않고 내손으로 죽자”하고 단식하다가 형 집행 전에 옥사 순국하였다.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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