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각 훼손한 일제의 철로 걷힘에 증손 소회 밝혀

2020.12.22 11:59:18

안동 임청각에서 78만 년 만에 철로 폐쇄 행사 열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제가 특별히 한 일이 있겠습니까? 일제가 임청각을 훼손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지 80년 만에 철거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임청각에 대한 많은 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이는 안동 임청각의 증손인 이항증(79세) 선생이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의 정기를 끊고자 1942년 2월 중앙선(청량리-안동) 철로를 부설했다. 안동역으로 가는 직선코스를 놓을 수 있었음에도 일제는 일부러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우회 철로를 놓았던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이던 임청각 집 앞에 철로를 놓아 밤낮으로 굉음을 울리게 하던 그 ‘징그러운 괴물 열차’는 지난 16일(수)밤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자 임청각에서는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16일(수) 밤 7시 30분, 안동역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고 다음날일 17일(목), 임청각에서 조상에게 고하는 고유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임청각에 드리운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행사’에 참여하여 지난한 세월 속에서 묵묵히 버텨온 임청각의 꿋꿋함에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인 임청각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며 "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 모두 찾아내겠다"고 다짐했었다.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이 '불령선인'(일제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을 일컫던 말)을 다수 배출한 집이라고하여 일제는 중앙선 철로를 관통시키고 이때 누천년 이어오던 50여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도 모두 헐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쓰라린 역사의 현장인 임청각에는 철로 폐쇄가 있던 지난 17일(목), 많은 언론들이 앞 다투어 ‘임청각을 지나는 마지막 철로’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고유제’에서는 증손 이항증 선생의 떨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문득, 임청각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던 시절, 임청각으로 이항증 선생을 찾아가 나눈 이야기가 떠 올랐다. “나의 증조부 이상룡(李相龍), 조부 이준형(李濬衡), 아버지 이병화(李炳華) 3대가 50여 년을 전 재산을 바쳐가며 독립투쟁을 했지만 대일항쟁기의 피해가 고스란히 남은 집 임청각과 유족을 국가는 외면했다. 조부인 석주 이상룡 선생은 헌법상 국가원수(대한민국정부 국무령)이지만 훈장(독립장) 하나로 때웠다. 보훈의 참뜻은 '나라가 유족을 책임지니 걱정하지 말고 나라 사랑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렇게 보훈유족이 생계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누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것이며, 안보가 지켜질 것인가?“

 

유족이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뿐 아니라 ‘임청각’의 소유권 문제로 이항증 선생은 노구의 몸으로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를 혼자 챙기며 동분서주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지난 16일, 임청각을 훼손한 중앙선 철로를 78년 만에 철거하게 되는 첫 삽을 뜬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늦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집,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을 지켜낸 후손의 한 맺힌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실 기자는 이 역사적인 날을 취재하고자, 16일(수)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오후 3시 38분발 안동행(6시54분 도착) 열차표를 사놓았었다. 78년 만에 운행을 마치고 민족의 한(恨), 하나가 걷히는 현장을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날 마지막 중앙선(청량리-안동) 열차는 저녁 7시 1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임청각을 지나 안동역에 도착하는 밤 10시 50분 열차였다. 그러나 너무 야심한 시각에 막차가 도착하기에 안동역에서는 청량리발 3시 38분, 안동 도착 (6시 54분) 열차를 기준으로 ‘마지막 열차에 대한 조촐한 행사’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코로나19가 확산되어가고 있어 증손인 이항증 선생으로부터 하루 전날 ‘모든 행사가 취소’ 되었다는 이야길 듣고 부득불 ‘마지막 열차표’를 취소하고 말았다.

 

”이 선생, 코로나19로 행사를 안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과 기자들이 밀려들어서...“

 

이항증 선생은 나의 열차표 취소에 대해 미안해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것은 임청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관심이 앞으로도 지속하길, 그리고 나아가 임청각이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으로부터 주목받는 곳이 되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사진 임청각 증손 이항증 선생 제공)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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