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의 여승>과 일엽스님 이야기

2021.02.13 11:10:13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 노래 가사입니다. 노래를 작사한 김문응씨는 어느 여승을 생각하고 작사한 것일까요? 수덕사가 비구니 절이니 많은 여승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스님으로 일엽스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상아의 음악편지》에는 일엽스님에 대한 글도 나옵니다. 일엽스님! 속세에서의 이름은 김원주! 그녀는 참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는 불가에 귀의한 것일까요?

 

그녀는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23살에 마흔을 넘긴 연희전문교수 이노익과 결혼합니다. 이노익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꽃과 같은 아내를 출판계의 꽃으로 만들었으나,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던 김원주는 이혼하고 일본으로 유학 갑니다. 그런데 동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석한 한 청년 오다 세이조가 김원주에게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그러나 세이조는 일본 최고 명문가의 종손인지라 집에서 혼인을 허락해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지만 세이조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원주를 계속 만나면서 둘 사이에는 사랑의 결실인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김원주는 산후조리를 마치자마자 달랑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다시 현해탄을 건너옵니다. 세이조와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하지만 세이조는 김원주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세이조는 집안과 의절을 하고 조선총독무 근무를 자원하여 현해탄을 건너옵니다. 그렇지만 김원주의 마음은 이미 싸늘히 변한 뒤였습니다. 그런 김원주를 만날 때 세이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결국, 세이조는 아들을 중학교 동창인 송기수에게 양자로 맡기고 독일로 떠납니다. 그리고 평생을 독신으로 보냅니다.

 

그 후 김원주는 악마파 시인 임장화와도 동거하고, 훗날 내무부장관과 동국대 총장을 지낸 백성욱과도 불같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백성욱은 남녀 사이 사랑을 뛰어넘은 근원적인 선(禪)의 세계에 더욱 관심이 있기에 김원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들어갑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세이조가 그렇게 김원주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김원주가 백성욱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백성욱은 끝내 김원주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뒤 김원주는 신문사 기자인 국기열과 사귀기도 하고, 재가승 하윤실과 혼인까지 하지만, 끝내 그 혼인도 파경으로 끝납니다.

 

속세에서 이렇게 여러 남자 틈에서 번뇌의 행각을 벌이던 김원주는 결국 백성욱이 찾아서 떠난 선의 세계로 들어서 33살에 머리를 깎고 드디어 비구니의 세계로 들어서 일엽스님이 됩니다. 그리하여 수덕사에서 만공스님의 제자로 화두를 놓고 치열하게 용맹정진할 때에 14살의 아들이 찾아옵니다. 바로 오다 세이조와 사이에서 태어나 송기수에게 입양되었던 송영업(오다 마사오)입니다. 그러나 일엽스님은 자신은 이미 불문에 들어섰다며 아들을 차갑게 내칩니다. 아무리 불자가 되었다지만 핏덩이 때 내친 아들에게 너무한 것이 아닐까? 일엽스님의 그런 처사를 이해는 하면서도 제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네요.

 

그런데 이때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는 김원주와 같이 1920년 조선의 대표적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첫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도 겉으로는 신여성으로 자유분방했지만, 마음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에 방황하고 있었지요. 그때 김원주가 일엽스님이 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출가하겠다고 만공스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원주를 받아준 만공스님은 나혜석은 받아주질 않습니다. 만공스님은 나혜석이 끝내 속세와의 질긴 끈을 완전히 끊을 수 없었다고 본 모양이지요. 그렇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머물며 계속 자신을 받아달라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송영업이 찾아온 것이고, 나혜석은 일엽스님 대신 친구의 아들을 따뜻하게 품어줍니다.

 

나혜석과의 만남은 송영업을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해줍니다. 그 뒤 송영업은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태신으로 바꾸고 화가로 성공하지요. 김일성 대학에 걸려 있는 김일성 초상화가 바로 그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김일성 초상화를 그리는 바람에 상당 기간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한국 화단에서는 배척을 당하지요. 일엽스님의 아들이어서 그랬나? 그도 66살에 출가하여 일당스님이 됩니다.

 

이런 일엽스님의 인생 파노라마를 알게 되고 ‘수덕사의 여승’을 들으니, 내게는 노래 속의 수덕사의 여승이 일엽스님의 모습으로 비칩니다. 실제로 노래 <수덕사의 여승>의 주인공이 일엽스님이라는 소문이 나서, 일엽스님의 제자들이 항의하기도 했다는군요. 노래를 부른 송춘희도 이때서야 일엽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일엽스님이 자신처럼 목회자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동질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송춘희도 불교로 개종하고 80이 넘은 나이에도 지금 법사로서 독실한 불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송춘희가 부르는 ‘수덕사의 여승’을 들으며 파란만장했던 일엽스님의 삶과 스님의 구도 세계를 꿈꾸어보시지요.

 

   ▲ 송춘희 <수덕사의 여승>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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