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조사, 환경문제의 새로운 해법일까?

2021.03.18 12:02:57

결론을 합리화하려는 방편으로 공론조사를 남용해서는 안 돼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5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는 우리나라의 탈핵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였다. 후쿠시마는 작은 도시여서 사고 후에 방사능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반경 30km 이내에 사는 인구가 17만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부산 근처의 고리 원전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반경 30km 이내에 무려 340만 명이 살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만에 하나라도 원전 사고가 나면 부산과 울산을 포함하여 동남권은 몰락하고 이어서 우리나라가 주저앉게 될 것으로 염려된다.

 

2012년의 대선에서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친원전 정책을 계승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하였다. 그러다가 2016년 9월 경주에서 진도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였다. 경주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 지진으로 첨성대가 기울어졌고, 불국사 지붕 기와가 땅에 떨어졌다. 원전이 밀집된 동남권은 더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지역 주민들의 원전 위험성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높아졌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종교계에서는 ‘잘 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앞당겨 치러진 2017년 5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의 백지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심의 변화를 의식한 홍준표 후보는 울산 기자회견에서 “원전으로 발전소를 짓는 일은 지양하고 가능하면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발언할 정도로, 대선 직전에 원전 주변 지역의 탈핵 분위기는 뜨거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된 직후인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행사에서, 시민사회단체의 기대와는 달리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가 아니라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적 합의를 만들겠다”라고 선언하였다. 백지화 공약이 ‘재검토’로 후퇴한 것이다.

 

이어서 6월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3달 동안 일시 중단하고 공사 여부를 공론조사에 맡긴다”라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정부에서는 공론조사를 위하여 긴급히 예산 46억 원을 책정하였다. 공론조사(또는 공론화)는 기존의 여론조사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갈등 해결방안으로서 일반 국민은 물론 환경단체나 친원전 단체에게나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었다. 공론조사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1인 1표 제도로서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이 아니면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대다수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정책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에 의해서 결정한다면, 최선의 결정 대신 잘못된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특정 세력이 금권, 관권 또는 언론을 통하여 무관심한 국민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공론조사는 이러한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 미국 스탠퍼드대의 피시킨(J. S. Fishkin) 교수가 1991년에 저서 <민주주의와 공론조사>를 통해 소개한 의사결정 기법이다.

 

공론조사는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대표성 있는 표본으로 뽑은 뒤에 참여자들을 학습시키고 토론시키는 숙의(熟議) 과정을 거치는 조사 기법인데, 크게 네 단계로 나눈다. 첫 단계는 주제에 대한 전국적인 1차 여론조사이다. 두 번째 단계는 1차 여론조사 응답자 가운데 성별ㆍ나이ㆍ지역을 고려하여 대표성 있는 토론 참가자(시민참여단)를 뽑는다. 세 번째 단계는 시민참여단을 한자리에 모아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 강연과 상호 토론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도 있는 학습과 토론을 위해 1박 2일 이상의 합숙이 권장된다. 마지막 단계는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와 같은 질문으로 2차 여론조사를 한다. 2차 여론 조사 결과는 정보 습득과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결과이다. 2차 여론조사 결과가 1차 여론조사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보는 일이 공론조사의 핵심이다.

 

신고리 5, 6호기 중단 문제를 공론조사로 해결하겠다고 결정한 뒤 한 달쯤 지난 7월 24일 9인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위원회는 8월 24일 여론조사 용역업체를 선정하였다. 여론조사 업체는 전국적으로 시민참여단을 뽑는 전화조사를 2만 명을 대상으로 하여 참여를 희망한 5981명을 뽑았다. 이 가운데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대한 의견, 성별, 나이, 지역 등을 고려해 시민참여단 5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였다.

 

천안에서 9월 16일 연 첫 회의에서는 478명의 시민참여단이 참석해서 건설 중단과 건설 재개 양측의 입장 청취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공론화위원회는 약 한 달 동안의 숙의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에게 찬반 양쪽의 주장을 설명하는 온라인 동영상 강의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자료집’을 제공하였다.

 

공론화위원회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2박 3일 동안의 합숙 최종토론회를 10월 13일에 열었다. 최종토론회는 KTV와 SNS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토론회를 마친 뒤에 시민참여단에게 마지막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 의견은 59.5%, 건설 중단 의견은 40.5%로 집계되었다.

 

앞으로 핵발전의 축소 또는 확대를 묻는 조사에서는 축소 의견이 54.2%로 나타났다. 공론화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재개, 그리고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할 것을 정부에게 권고했다. 10월 24일, 정부에서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탈원전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갈등 해결의 새로운 조사 기법으로서 공론조사는 탈원전 정책의 결정 과정에 성공적으로 도입되었지만 단점이 드러났다. 원전사고가 났을 때 30km 반경 안에 있는 주민들은 원전 사고가 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지역 주민들은 멀리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보다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클 것이다.

 

그러므로 원전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사는 340만 명에게는 단순한 인구비례가 아니고 가중치를 부여하여 표본(시민참여단)에 더 많이 포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공론조사에서는 기계적인 인구비례로 참여단의 수를 결정하였다. 이 문제는 앞으로 공론조사를 시행할 때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조사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공론조사가 갈등이 있는 정책의 결정 모델로서 정부기관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제주도에서는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서 영리병원 개설을 반대했다. 교육부에서는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을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결정하였다. 대구시에서는 ‘대구경북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다. 인천시에서는 쓰레기 매립지를 선정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다. 공론조사가 갈등이 있는 모든 정책의 해결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싫어했다. 다수를 따르는 결정을 내리게 될 때, 사람들은 자칫 합리성보다는 감정에 이끌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비판했다. 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시민배심원 500명의 투표로 운명이 결정되었다.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는 다수결(280 대 220)로 사형이 결정되었다.

 

플라톤의 주장이 일리가 있음은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히틀러는 다수의 투표에 의해 나치당의 당수가 되었고 마침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부동산 부자였던 도날드 트럼프는 다수의 투표에 의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공론화위원회의 결정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본다.

 

필자가 사는 평창군의 인근 정선군의 가리왕산에 2018 동계올림픽을 위하여 스키장이 건설되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산림의 원상 복구를 위하여 스키장 시설을 철거하려 하자 주민들은 리프트 시설의 존치를 주장하며 반대하였다. 이왕 만든 시설을 관광용으로 이용하자는 주민들과 처음 약속대로 철거하려는 산림청이 지금까지도 대치하고 있다.

 

 

정선 스키장 시설의 존치 문제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면 어떠한 결론이 나올까? 그러한 결론이 과연 합리적이며 최선의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환경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론조사는 매우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행정기관에서 정한 결론을 합리화하려는 방편으로 공론조사를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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