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전 기억 되살려낸 모슬포 훈련소

2021.05.23 11:55:05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2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나는 위병소에 근무하던 병사에게 아버지의 국가유공자증을 내밀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고, 당신께서 훈련받으시던 이 부대를 꼭 한 번 보시기를 원한다 했더니, 어찌어찌 연락을 받았는지 부대장이 직접 정문까지 나와서 맞아 주었다.

 

 

 

“어르신 같은 선배님들께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 주셔서 저희가 편안하게 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감사를 드립니다.”

 

내 또래쯤 돼 보이는 부대장의 이런 인사가, 내가 듣기에는 많이 오글거리는 말이었지만,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그의 인사치레가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아버지 덕분에 처음으로 특혜를 받아보는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 훈련소 건물로 사용되던 건물은 한, 두 동 정도만 남아있었다. 그렇게나 보고 싶어 하시던 70여 년 전의 모습은, 사실 찾아보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뭔가 기억해 내시려는 듯 이곳저곳을 열심히 둘러보고 계셨다.

 

“아이고, 어대가 어댄지 도무지 모리겠다.”

 

칠십 년 세월의 풍파는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습들을 모두 쓸어가 버렸고, 그냥 건물 앞 팻말에만 ‘무슨 건물로 사용되었다.’라는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져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 적혀져 있는 것들을 읽어 드렸지만, 아버지의 눈은 그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셔서 내 설명이 귀어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칠십 년 전 앳된 청년들이 가졌을 공포가 당신의 눈에 다시 보이셨을까? 아버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남아계셨다.

 

나름 친절한 부대장은 묻지 않아도 모슬포 맛집이란 곳들을 이곳저곳 알려주었지만, 주로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이라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의 또 다른 배려로 부대 맞은편 산 위, 공군 레이더기지에 올라가 모슬포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관목들이 이리저리 쓰러져있고, 도로 상태도 많이 불량한 아스팔트로 되어있는 길을 올라 레이더기지 입구 경비초소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그 언덕에서 바라본 모슬포의 전경은 내 눈에는 그저 그런 포구를 가진 작은 시골마을일 뿐이었지만, 내 아버지는 가지고 계시던 지팡이를 들어 이리저리 가리키시며, “저기 저쪽 어디에 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당신이 그리도 기다리시던 제주 여행의 첫날이었다.

 

 

김동하 작가 gattoladr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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