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조각보

2021.07.07 23:31:04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3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찹쌀로 밥을 짓고 미역으로 국을 끓였다 / 질그릇에 나물반찬을 담았으니 / 비록 박하지만 정성이 어려 있다 / 늙으신 어머니는 신(神)에게 절을 올려 기원하기를 / 아들의 수(壽)가 7~80살을 살게 해달라고 하였다(줄임) / 옛날 작은 몸으로 땅에 떨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 빙설(氷雪)보다 맑고 구슬보다 밝았었다 / 잡으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시며 / 보자기 속에 아이 키우던 그 정이 가련도 하다 / 해마다 운명(運命)과 관상(觀相)을 들먹이며 / 평탄하게 살다가 공명(功名)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는 한말의 학자이자 사상가인 해학 이기(李沂, 1848~1909)의 문집인 《해학유서(海鶴遺書)》에 나오는 시입니다. 여기서 해학 선생은 어머니가 자신을 보자기에 싸서 길렀다고 말하는데 오늘날의 흔해 빠진 나일론 보자기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보자기 쓰임새는 매우 다양하여 혼례 때의 청홍 보자기를 비롯하여 오대산 사고(史庫)의 책궤를 싸던 보자기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세종 11년(1429)에는 내섬시(內贍寺, 여러 궁(宮)에 올리는 음식물, 포목(布木)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 우지개가 은 주발, 흰 모시비단과 함께 명주 보자기 등을 훔치다가 들킨 일이 있을 정도로 보자기는 귀한 물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등 4건의 유물은 보물 제1777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때 복장유물 속에 3점의 조각보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보자기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보 역사가 5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귀한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조각조각을 잇대어 만든 조각보는 오늘날 보아도 그 어떤 예술가의 작품보다도 색의 조화라든가 디자인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여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보자기”는 지금보다 옛날에 더 귀한 대접을 받았지요.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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