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2021.07.13 22:28:30

[맛있는 일본이야기 609]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친절하게 자신을 설명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를 찾아가는 길은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문은 끝이 없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없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나는 문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이는 허연 시인의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속초 설악산책(雪嶽山冊) 도서관 입구에는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띄는 곳에 책 표지를 앞으로 해서 세워둔 테이블이 있다. 이곳에 드나든 지 보름이 넘었지만,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라서 그냥 무심히 지나치다가 오늘 불현듯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에 시선이 꽂혔다. 표지에 영어로 ‘KAWABATA YASUNRI’라고 쓰여 있는 바람에 활자의 의미를 새기지 않은 채 ‘웬 영어책을 진열했나?’ 싶었다. 보름 동안 이 책이 내 시야에서 ‘영어책’으로 여겨졌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책 장을 넘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머리를 숙여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목덜미에 삼나무 숲의 어두운 푸른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는 그쪽을 보고 움찔 목을 움츠렸다.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이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뺨이 떠올라 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

 

책 속에는 온통 눈세계 곧 ‘설국’ 사진이 가득하다. 그리고 위의 구절처럼 허연 시인이 고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작품에 나오는 구절들이 시처럼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을 쓴 허연 시인은 연구원으로 일본에 가 있으면서 우연한 기회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하여,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태어난 오사카를 시작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을 추적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도쿄 인근 이바라키에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관이다. 이곳을 거쳐 에치고유자와의 다카한 료칸, 다시 교토 기타야마의 삼나무숲을 들러서 다섯 번째는 이즈반도의 유모토칸엘 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의 무대였던 이즈반도의 시모다항은 내게도 추억의 장소다. 그곳에는 나의 절친인 이토 노리코 씨가 구순의 친정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내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우리는 거의 해마다 만났다. 그의 노모는 불청객 코로나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딸처럼 여기던 나를 날마다 기다린다고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곳 이즈반도의 유모토칸에 체류하면서 《이즈의 무희》를 썼다. 이즈반도를 떠나 허연 시인은 다시 도쿄로 올라와 그가 다니던 도쿄대학과 이어 진보초의 서점가와 카페로 발길을 옮긴다. 진보초라면 나 역시 도쿄에 있을 때 하루가 멀다고 드나들던 고서점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대학에 다닌 시절만 해도 ‘책처럼 좋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어 책을 안 보고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그때, 특히 대학생들은 진보초를 놀이터 삼아 드나들곤 하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허연 시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말년을 보낸 가마쿠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 가마쿠라! 학생들을 인솔하고 일본 연수를 갈 때면 항상 들르는 가마쿠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말년을 이곳을 택한 까닭을 알 것 같다. 이끼 낀 고즈넉한 고찰과 에노시마의 저녁놀, 그리고 사계절 출렁대는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곳, 그곳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73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유서가 없는 상태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그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다, 아니다’라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그 작가의 삶을 추적한 또 하나의 시 같은 여행기,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난 시간은 즐거웠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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