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강 건너가 막걸리 한잔을

2021.07.29 11:43:40

평창강 따라 걷기 제5구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이규석 우명길 원영환 모두 5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4월 27일 화요일

 

오늘 걸을 평창강 제5구간은 평창읍 용항리 용항민박집 앞에서 출발하여 평창읍 상리 평화길 입구에 이르는 10.9 km 거리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석영(박인기)은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 22분에 기차를 타서 평창역에 오전 9시 40분에 도착한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답사일 새벽 5시 42분에 카톡 방에 그가 글과 사진을 올렸다. ‘연두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연두의 시간>

 

동네 가까운 대모산에 갔습니다.

'봄날은 간다' 노래를 웅얼거리며...

노래 사연이 애틋합니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애틋함이 어찌 생겨날까.

 

꽃들 많이 피고,

꽃 사진이 SNS에 넘쳐납니다.

오늘 대모산에서는 신록만 보기로 합니다.

이를테면 '꽃보다 신록'입니다.

 

신록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잎새들이 짙은 녹색의 중심에 닿기 전,

연두의 시간입니다.

저 연두의 봄날도 빠르게 가겠지요.

금방 사라지겠지요.

 

이런 봄날,

숲에서 느끼는 연두는 빛깔이라기보다는

짧게 지나치는 시간의 그림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짧기 때문에 연두의 시간이 아름답습니다.

좀 짠하게 아름답습니다.

빛깔 머금었는가 하는 순간,

이미 흩어져 버리는 기색으로 연두가 나를 스쳐갑니다.

 

훼손될 틈조차도 없었던 첫사랑을 떠올립니다.

그녀가 눈치조차도 채지 못했을 내 첫사랑,

그 또한 내 인생에서 연두의 시절,

연두의 시간이었겠지요.

 

아, 참으로 좋은 글이다. 이 글에서 이른 봄 짧은 연두의 시간을 짧았던 첫사랑으로 비유한 구절이 백미다. 그는 “짧기 때문에 연두의 시간이 아름답습니다”라고 읊었다. 맞는 말이다. 연두의 시간은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리라.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죽기 때문에 살아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제4구간 종점은 평창강의 서쪽이었고, 제5구간의 시작점은 강의 동쪽이다. 강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달라져서, 강의 서쪽은 임하리이고 동쪽은 용항리(龍項里)이다. 용항이라는 지명은 마을 남서쪽에서 뻗어내린 산자락이 마치 용의 목처럼 생겨서 그렇게 지었다는데, 미르목이라고도 한다. 우리 일행 5명은 용항민박집 앞에서 오전 11시 5분에 출발하였다. 출발지점에 효석문학100리길 표시판이 있었다.

 

 

산과 들과 강에 이제 봄이 완연하다. 제4구간을 걸었던 12일 전과 달리 산과 들에는 초록의 잎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산에는 진달래가 울긋불긋 피어 있다. 둑길에는 곳곳에 가로수로 심은 벚꽃이 활짝 피었다. 새하얀 벚꽃이 눈부시게 만발했다. 붉은 점이 섞인 하얀 물감을 마구 뿌려놓은 듯 황홀한 풍경이었다. 벌들이 웅웅거리며 꽃 사이를 날아다녔다. 벚꽃은 피어있는 기간이 다른 봄꽃에 비해 길지가 않다. 며칠 화려하게 피어 있다가 바람이라도 한번 세게 불면 일제히 우수수 떨어져 버린다.

 

기온은 19도, 걷기에 적당하다. 이처럼 좋은 계절에 평창강을 따라 걷는 일은 어찌 보면 호사다. 우리처럼 걸으면서 봄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이것저것 세상살이에 얽매이다 보면 평창강 걷기에 따라나서지 못하고 우리를 부러워한다. 봄은 걷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우리의 답사길은 효석문학100리길 4구간과 일부 겹친다. 평창강은 출발점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작은 산봉우리를 만나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천천히 흘러간다. 우리의 답사길도 강 따라서 구부러진다. 용항 마을은 외딴 마을이다. 산과 강에 둘러싸여 더는 갈 곳이 없다. 오직 용항교를 통해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외진 마을이다.

 

동쪽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건너편 강가에 나룻배가 하나 보인다. 배 위로 밧줄이 길게 강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다. 배 근처에 한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골짜기 사이로 작은 길이 보인다. 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마도 집이 나타날 것이다. 카카오맵으로 검색해보니 길 따라 올라가면 지번(地番) 세 개가 나타난다. 아마 집이 세 채 있나보다.


 

 

은곡이 나룻배를 바라보더니 동경하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아, 막걸리 한 통 짊어지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가 저 사람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네요.”

내가 거들었다.

“나도 따라가고 싶네요. 내가 소리북 메고 가서 판소리 한마당 펼치면 참 좋겠네요.”

“언제 한번 그래 볼까요?”

“네, 좋지요. 얼씨구나 좋~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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