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자기 걸음으로 걷는 당신

2021.09.04 11:45:12

김상현, <소를 보았다>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7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를 보았다

 

                                             - 김상현

 

       죽도록 일만 하는 당신

       분노를 사랑으로 되새김질 한 당신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 당신

       일상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당신

       누추한 곳에서 평안을 취하는 당신

       언제나 자기 걸음으로 걷는 당신

       모두가 잠든 사이 혼자 우는 당신

       무거운 짐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

       멍에까지도 운명으로 사랑하는 당신

       죽어 가죽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당신

 

       이 땅의 아버지들이여.

 

 

 

 

요즘에는 한우(韓牛)라 하면 한국에서 기르는 소로 육우(肉牛) 곧 주로 고기를 얻으려고 기르는 소를 말하지만, 원래는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온 ‘일소’였다. 그 한우를 우리는 먼저 황우(黃牛, 누렁소)로 떠올리는데, 1399년 권중화, 한상경, 조준 등이 쓴 수의학책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보면 누렁소에 더하여 검정소(흑우), 흰소(백우), 칡소 등 다양한 품종이 있었다. 칡소란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배기 황소를 말한다.

 

조선 중기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곧 영모도(翎毛圖)를 잘 그렸던 화가 퇴촌(退村) 김식(金埴)의 그림 가운데는 어미소와 젖을 빠는 송아지의 모습을 그린 소그림(牛圖)이 있다. 이 그림에 보이는 소는 부드러운 몸매를 보여주고, X자 모양의 주둥이와 둥근 테들 두른 듯한 눈망울이 특징이다. 거기에 더하여 젖을 물린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애틋한 자식 사랑을 느낀다.

 

김상현 시인은 자신의 시 <소를 보았다>에서 그 소에게서 아버지를 보았다. 김 시인은 소를 “죽도록 일만 하는 당신, 분노를 사랑으로 되새김질 한 당신,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 당신, 일상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당신”이란다. 바로 소를 이르는 말이지만 그런 소의 이미지는 아버지를 그리게 한다. 또 “누추한 곳에서 평안을 취하고, 언제나 자기 걸음으로 걷는 아버지”를 연상해낸다. 김상현 시인의 연상은 기막힌 발견, 아닌 당연한 상상으로 이 땅의 아버지들을 노래하고 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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