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규의 '간도사진관', 중국 동포들의 삶

2021.12.09 11:14:58

12월 21일(화)까지, 종로 아트비트갤러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간도(만주지역)라고 하면 ‘일제 침략기에 항일독립운동이 펼쳐지던 곳’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기자 역시 간도에 대한 인상은 이 이상을 넘지 못했다. 특히 이 지역을 답사한 적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갖고 있던 ‘간도’에 대한 이미지를 일찌감치 털어버린 사람이 있다. 바로 사진작가 류은규 씨다. 류 작가는 한중수교 무렵부터 지금까지 약 30 여년에 이르는 동안 중국 동북삼성 곧 간도 전역을 찾아다니며 중국동포(조선족)들을 촬영했다.

 

자기가 찍은 사진만이 사진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의식을 갖고 오래된 사진을 후대에 넘겨주는 것 또한 사진가의 임무이자 역사에 대한 책무라고 봅니다. 개인의 기록이 정리되면, 자료가 되고, 자료가 모여 시간이 흐르면 사료(史料)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중국동포들이 갖고 있는 자료사진이나 기념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지요.”

 

 

듣고 보니 그렇다. 평소 사진가란 자신의 작품을 남기는 것이 전부라고 여겨왔던 생각이 류 작가의 이 말에 그만 허물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사진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오래된 사진을 수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꼭 사진가여야 하는가?'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기자의 이런 생각도 류 작가의 다음 한마디에 움츠러들고 말았다.

 

“저는 사진가의 시각으로 사진을 읽어내고 시대를 읽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것을 저는 사진사회학이라 부릅니다.” 아뿔사! 제 아무리 오래된 사진을 많이 모은다해도 ‘사진사회학’을 모른다면 더나아가 ‘시대를 읽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건 철학이 부재된 단순 수집 취미에 그친다는 것을 류 작가의 말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사진은 모두 류 작가의 ‘사진사회학적 시각’을 거친 것으로 직접 찍은 사진과 수집한 자료사진 등 모두 155점이 출품되었다. 이는 광복 전부터 대략 1980년대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의 사진들로 중국동포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사진들이다.

 

류은규 작가 역시 간도지역의 촬영 시작은 항일독립투사들의 발자취에 초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수많은 동포를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포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류 작가의 그런 이야기가 실감이 간다.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한 장의 흑백 사진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흑백텔레비전을 둘러싼 가족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1982년 룡정의 모습인데 그 무렵 한국에서는 컬러텔레비전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다. 그러나 그 이전 흑백텔레비전이 막 보급되던 시절을 잊을 수 없다. 70년대로 기억되는데 그때 흑백텔레비전은 동네에서 좀 산다고 하는 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고가품의 가보 1호였다. 초등학교 시절 그 부잣집 대청마루엔 동네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녁밥을 먹고 모여들었다. 한참 ‘여로’ 연속극이 화제가 되던 때였다. 인기 연속극 ‘여로’는 1972년 무렵에 크게 히트한 작품으로 장욱제, 태현실, 박주아, 박근형 등이 출연했던 기억이 새롭다.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던 그 흑백텔레비전은 컬러텔레비전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로, 지금은 근대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또한 그 흑백텔레비전 앞에서 턱을 괴고 연속극을 보던 사람들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그 시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적 기록물이 되는 순간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이번 전시의 의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중국동포들의 생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광복 전(1945년 이전)만 해도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카메라가 흔했던 시절이 아니라서 거의 모든 사진은 사진관에 가서 찍어야 했지요. 따라서 그 당시 사진관은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기록해주는 향토사진사학자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사진관은 얼굴 사진은 물론이고, 아기 돌잔치부터 결혼식, 환갑ㆍ진갑 같은 가족행사나 졸업식 등의 학교 행사 및 광고, 풍경, 사건 등의 다양한 영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당시 사진관은 사진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기도 했지요. 실제로 국내의 경우, 70년대까지만 해도 사진 교육은 사진관에서 이뤄졌습니다. 사진학과가 설치되기 이전이라 저 역시 사진관에서 배운 세대입니다.”

 

 

듣고 보니 한국도 집집마다 카메라가 있어서 사진관을 찾지 않게 된 것이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 중에 채색사진 앞에 서니 더욱더 옛일이 떠오른다. 채색사진이란 컬러사진이 없던 시절, 사진사가 흑백사진에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채색을 입혀 마치 컬러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요즘 말로 하면 컬러 뽀샵 처리라고나 할까?

 

 

전시장 구성을 보면 1층은 주로 70~80년대 중국동포가 찍은 필름으로 디지털 프린트한 것이고, 2층은 광복 전부터 1970년대 오리지널 프린트와 류 작가가 촬영한 작품들이다. 오리지널 프린트 가운데 광복 전 사진은 그 당시 사진관을 경영했던 일본인 사진사가 찍은 것도 있다. 또한 광복 뒤 사진은 현지 사진관에서 찍은 것들이다. 1970년대까지 유리건판을 쓰는 경우가 많았고, 필름으로 촬영해도 확대기가 없어서 필름 크기로 밀착 인화를 한 것이라서 사이즈가 작은 것들이 있는데 주로 2층 전시장 사진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사진들은 일일이 사진사의 수작업을 거쳐 완성된 사진들로 대부분 이 세상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사진들이라고 류 작가는 말한다.

 

 

“해방 후 반세기 가까이 우리가 중국을 왕래하지 못한 사이 중국 내에서는 국공내전, 항미원조, 정풍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운동 등이 일어났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격변의 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중국동포들은 격동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사진 하나하나가 시대의 ‘진실’을 생생하게 말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생활과 밀착한 정겨운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통해 ‘동토(凍土)’가 아닌 또 다른 고향에서 지낸 재중 동포의 삶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는 이번 전시를 어떠한 관점에서 관람하면 좋을 지에 관한 질문에 류 작가가 한 답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한다. “우리가 무관심했던 재중 동포들이 살아낸 질곡의 시대를 사진을 통해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이다.

 

 

 

덧붙여 류 작가는 말했다. 이번 <간도사진관> 전시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현재 5만여 장의 사진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불과 155점만을 전시하고 있으니 류 작가의 말대로 이 작업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류 작가는 적어도 앞으로 10회 정도는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관련지어 10권의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고도 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이선희 씨(인천 연수구 거주)는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간도사진관>이란 제목에 끌려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오기 전에는 반세기 전의 사진이라 조국을 떠나 어렵게 살던 시절의 사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뜻밖에 낭만적인 모습과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의 사진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어 위안을 받았습니다. 특히 유치원생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하는 장면이나 1982년에 나온 안테나 달린 흑백텔레비전을 둘러싸고 온가족이 흐뭇해하는 사진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봄이 되어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다듬이질 하는 모습 등도 무척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 라고 전시작품을 둘러본 소감을 말했다.

 

 

대담을 마치려고 할 때 류은규 작가는 “역사에 대한 기록을 문자로만 이어오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입니다. 특히 근현대사는 사진이나 영상 기록이 오히려 자료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지요”라고 했다.

 

류은규 작가, 그러고 보니 그는 30여 년 전부터 동토(凍土)로 여기던 땅에 깊숙이 들어가 따스한 시선으로 중국동포들의 삶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기록한 이 시대의 진정한 역사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막식 행사 없이 사진전이 시작된 어제(8일) 첫날, 기자가 찾은 오후 3시 무렵, 전시장에는 <간도사진관>을 보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하나 같이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감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시안내>

2021년 12월 8일(수) - 12월 21일(화)  오전 11:30 - 저녁 18:30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갤러리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3길 74-13  전화 02-738-5511

아트비트갤러리 누리집 : http://www.artbit.kr/

류은규 작가 연락처 : 010-3099-8660, ryutoda@hanmail.net

 

<류은규 작가 약력>

1993년부터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중국어연수를 하면서 조선족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1995년부터 연변대학교 민족연구소에 적을 두며 ‘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 작업을 위해 사진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사진과 교수를 지냈고, 대련의과대학교 사진과, 남경시각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1~ 중국 하얼빈대학교 디자인대학 사진학과 외국인초빙교수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사진예술과 교수 재직 중

2018~2021 인천국제해양미디어페스티벌 총감독

2021 SILK ROAD YOUTH INTERNATIONAL PHOTOGRAPHY EXHIBITION, CHINA 부회장

2021 중국 산동성 제남국제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

 

<개인전>

2020 약사동의 기억-춘천교도소 100년의 기억전 춘천 터무니창작소

2019 제8회 시상반나 국제영상전 중국 운남성

2019 3.1절 100주년 기념 류은규사진 및 아카이브 전 ‘잊혀진 흔적’ 인천아트플렛홈 B동

2018 제7회 시상반나 국제영상전 중국 운남성

2018 ABIRYN 국제사진 페스티벌 폴란드 ABIRYN

고베 인천 예술 교류 프로젝트 ‘백의의 삶’ KOBE STUDIO Y3 일본 고베

2017 서안국제사진축제 중국 서안 외 개인전 30회

 

<수상경력>

2018 Xishuangbanna Foto Festival 대상

2015 NEW YORK IMAGE OF CHINA 수상

2014 수림문화재단 수림사진상

2002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우수외국인교수상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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