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순절비, 영규대사비서 일제 만행을 보다

2021.12.12 11:14:00

일제 경찰이 부순 순절비, 광복 뒤에 복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나라에 충성하고 항상 올바른 마음을 굳게 지녀야 한다.” 이는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 선생의 좌우명 ‘세독충정(世篤忠貞)’의 글귀다.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뛰어들어 장렬히 순국한 고경명(1533∼1592) 의병장의 비각은 충남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에 야산에 있다. 초겨울 날씨지만 이른 아침에 찾은 비각으로 오르는 산기슭은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아침 이슬까지 머금어 촉촉이 젖어 있었다. 비각을 세운 이 일대가 고경명 의병장이 왜군과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곳이라니 땅을 밟는 것조차 숙연해진다.

 

 

 

 

현재의 비각은 효종 7년(1656) 고경명 의병장이 순국한 뒤 이곳에 세웠는데 일제침략기인 1940년, 일본 경찰의 만행으로 파괴된 것을 후손들이 조각난 비각 파편을 모아두었다가 1962년에 지금의 석조비각(石造碑閣)을 건립한 것이다.

 

금산군의 일제강점기 때 비각 만행 장소는 또 다른 곳에도 있다. 고경명 선생 비각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천년 고찰 보석사(寶石寺)가 그곳이다. 만행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보석사 입구에 서있는 의병승장 영규대사의 비석이다.

 

 

 

 

의병승장비는 1592년(선조25) 8월 18일에 있었던 제2차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영규대사와 승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839년에 금산 보석사 입구에 세운 것이다. 비문 안내문에는 1940년, 일본 경찰이 비각을 부수고 비문의 글자를 훼손하여 땅에 묻어 버린 것을 1945년 광복 뒤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1979년 비각을 세웠고, 1980년에 영규대사 국역비를 건립하였다.

 

 

 

그런가 하면 칠백의총 경내에 있는 중봉 조헌 선생 순의비 역시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다. 이 비는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重峰趙先生一軍殉義碑)라는 이름의 비로 이 역시 1940년, 금산경찰서장 이시카와 미치오가 순의비를 부숴 버린 것을 인근 주민들이 파편을 모아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광복 뒤에 다시 파내 1971년 4월에 복원한 것이다.

 

 

 

흉악한 일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 백성들을 괴롭히고, 그 후손들은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돌비석까지 깨부쉈다. 곳곳에 이와같은 현장이 얼마나 쌔고 쌨을까?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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