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농담

2022.01.16 11:31:42

어머니 주위에서 늘 그를 본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8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그의 눈에 띄일 때가 됐지

나도 죽음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됐거든

 

어머니 주위에는 늘 있어

어느 때는

등 굽고 조그마해진 어머니를 업고 있어

 

나를 본 그가

네가 먼저 가고 싶니

 

농담인 게지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

마치 마저 써야 할 시가 좀 더 있다는 듯

 

장석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에 나오는 시 ‘죽음에 관한 농담’입니다. 장 시인은 제 고교 동기로, 고등학교 때도 화동문학상을 탄 문재(文材)였습니다. 고교 졸업 뒤에도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지요. 그렇지만 본격적인 문인의 길을 걷지 않고, 가업을 이어받아 경남 통영에서 오랫동안 바다의 시어(詩語)를 차곡차곡 가슴에 쌓아두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 오랜 침묵을 깨고 시집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와 《우리 별의 봄》을 연달아 냈었지요. 그리고 세 번째 시집을 작년 11월에 냈고요. 40년 동안 장 시인의 가슴 속에 익을 대로 익은 시어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니, 2년 사이에 3권의 시집을 냈네요.

 

이번 시집에서 저에게는 이 시가 먼저 제 눈에 들어옵니다. 저도 이제는 노년층에 들어섰으니, 저 멀리서 언뜻언뜻 그의 존재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 시가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인가? 장 시인도 그의 눈에 띌 때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장 시인은 어머니 주위에서 늘 그를 본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그가 등 굽고 조그마해진 어머니를 업고 있는 것 같다고 하네요.

 

이 시구(詩句)를 보니 저도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어느 해이던가, 어머님이 침대에서 몸을 오그리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작아지셨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며 마음이 애잔해졌었지요. 아버님은 평생을 강인하게 살아오신 분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과 단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하면서 검버섯이 짙게 핀 아버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 아버님도 이젠 나이가 드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잠시 수저를 놓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은 때로부터 또 세월은 흘러 흘러, 지금은 나도 장 시인처럼 아버님, 어머님 주위에서 그를 보게 되는군요. 아버님, 어머님이 그를 따라가실 때까지 자주 찾아뵙고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 나약한 중생은 그 생각 하나 제대로 실천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 시인의 어머니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그가 장 시인을 보더니, 네가 먼저 가고 싶냐고 하네요. 그러자 장 시인은 무슨 농담 하냐면서, 시작(詩作)에 열중하는 듯 대답도 안 하는군요. 하하! 나한테 그가 왔으면 어떻게 했을까? 장 시인은 농담하냐며 대답도 안 했다지만, 나는 벌컥 화를 내며 쫓아버렸을까?

 

장 시인도 이제 이런 시를 쓴 만큼 나이를 먹었고, 저도 이런 시에 공감하면서 시평을 쓰고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아! 흘러간 세월이여~~~ 죽음에 관한 장 시인의 시 또 한 편을 볼까요?

 

차를 버리고

구름을 잡아타는 것이다

 

아주 긴 은갈치의 빛나는 등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는 길을 따라

 

저녁 식사 약속 따위는 취소해버리고

이제껏 미처 하지 못했던

진지한 생각을 하자

 

죽음으로 떠남은

오래된 일상과 단지 조금 다른 일

 

생각해 보라

주름살과 벗어진 머리와 검버섯 장식

이 재미있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애써왔는가

 

장 시인의 ‘단지 이런 일’이라는 시입니다. 그가 왔을 때 농담하냐며 모른 척하던 장 시인은 이 시에서는 죽음으로 떠남은 오래된 일상과 단지 조금 다른 일뿐이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주름살과 벗어진 머리와 검버섯 장식, 이 재미있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애써왔냐고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생사를 초월한 어느 선사(禪師)의 말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장 시인도 이제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 초연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가? 이 시를 보다 보니 나이 들어 좋다고 하시던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의 말씀도 생각나는군요.

 

박경리 선생님이 이러셨지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리고 박완서 선생님은 이러셨고요.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죽음에 관한 농담을 할 수 있고, 죽음을 단지 이런 일이라고 말하는 장 시인! 앞으로 그가 또 죽음에 관한 어떤 사유의 시를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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