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 올린 고구려 사람들의 바람

2022.02.03 12:05:04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76] - 고구려 수막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구려 사람들은 연꽃무늬[蓮花文], 짐승얼굴무늬[怪獸面文], 구름무늬[卷雲文], 인동무늬[忍冬文] 등 다양한 주제의 수막새에 바람을 담아 지붕 위에 올렸습니다. 막새면에 입체감 있는 연꽃을 배치한 연꽃무늬 수막새는 불교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연꽃의 형태와 숫자에 변화를 준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막새면 전체에 짐승의 얼굴을 가득 채운 짐승얼굴무늬 수막새는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강합니다. 부릅뜬 눈,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크게 벌린 입, 두툼한 코 등을 양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의 기와집을 보여주는 다양한 증거

 

기와는 목조와가(木造瓦家) 전통의 동아시아에서 일찍부터 사용해 온 건축부재입니다. 목조건물의 지붕에 얹는 기와는 눈과 빗물의 침수를 막고 온ㆍ습도의 기후변화를 견딜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건물을 꾸미고 위용을 돋보이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기와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삼국시대의 건축은 원형이 전해지지 않아 당시의 건축문화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경우에는 고분벽화에서 무덤 주인인 귀족층의 주거 공간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당서(舊唐書)》 고(구)려전에 “산과 골짜기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는데 모두 띠로 지붕을 엮었으며, 오직 사원, 신묘, 왕궁 및 관청에만 기와를 사용하였다[所居必依山谷 皆以茅草葺舍 唯佛舍神廟及王宮官府乃用瓦]”라고 기록되어 있어, 일부 건물에만 기와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이 고구려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초기 고분벽화를 보면 그 수준이 상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악 1호분 벽화에는 치미까지 올린 2층의 큰 기와집이 있고, 그 주위에는 기와를 이은 회랑이 그려져 있습니다. 안악 3호분 벽화에는 부엌과 마굿간, 방앗간에도 기와와 막새, 치미를 올린 지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초기 고분벽화에는 현재의 삶이 사후에도 이어진다는 내세관을 바탕으로 무덤 주인의 삶이 내세에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그 표현이 매우 현실적입니다.

 

중국과 인접하여 빈번하게 교류한 고구려는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와전(瓦塼, 기와벽돌)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지었습니다. 와전은 주로 수도였던 지안[集安]과 평양을 중심으로 궁전ㆍ무덤ㆍ절터ㆍ산성 등에서 주로 출토됩니다. 지안시 인민욕지(人民浴池)에서 출토된 구름무늬 수막새에는 '太寧四年'라는 글씨가 있어 32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적어도 4세기 전반에는 고구려에서 수막새를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연꽃무늬 수막새의 경우 새겨진 글씨가 없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불교의 도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집모양토기는 일제강점기에 평양시 평양철교 부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고구려의 기와집에 관한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모난 지상식 건물에 우진각 지붕(건물 네 면에 지붕면이 있고 추녀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게 되는 지붕)이 올려진 형태로, 지붕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골을 파서 기와를 얹은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벽면에는 문과 창문을 나타낸 듯 중앙에 정사각형, 그 좌우로 원형의 구멍이 뚫려있으며, 바닥에는 물체를 고정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형의 구멍이 있습니다. 무덤에 넣기 위해 만들어진 명기(明器)로 추정됩니다.

 

 

 

고구려 기와의 특징 편

 

고구려의 기와는 지붕에서 사용되는 위치에 따라 기본 기와인 암키와와 수키와를 비롯하여 막새기와, 서까래기와, 마루기와, 특수기와 등 형태와 기능을 달리하여 만들었습니다. 기본 기와는 지붕에 이어져 기왓등과 기왓골을 형성하여 눈과 빗물의 침수를 방지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기와이며, 암키와ㆍ수키와로 구분됩니다. 암키와는 나무를 좁고 길게 다듬거나 대나무를 쪼개어 조각마다 구멍을 뚫어 끈으로 엮은 ‘통쪽와통’을 써서 만들었으며, 여러 장의 기와를 잘 겹칠 수 있도록 모서리를 잘라 내는 귀접이 기술은 평양지역과 임진강유역 고구려 유적에서만 확인되는 기법입니다.

 

막새(瓦當)는 암ㆍ수키와의 한쪽 끝에 문양을 새긴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목조 건물의 처마 끝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무늬 기와입니다. 고구려의 막새는 수막새ㆍ반원막새ㆍ끝암키와로 구분됩니다. 반원막새는 원형의 수막새를 양분하여 제작한 특수한 형태로 고구려의 독특한 양식입니다. 암키와의 단면을 손이나 도구로 눌러 문양을 내는 누른무늬 암키와는 후대의 암막새처럼 처마 끝부분을 장식하는 기와로 추정되기 때문에 끝암키와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편 마루기와에는 목조건물의 마루를 축조하는 적새ㆍ부고ㆍ착고, 마루를 장식하는 치미ㆍ귀면기와ㆍ마루 수막새 따위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수막새에는 구름무늬ㆍ연꽃무늬ㆍ인동무늬ㆍ짐승얼굴무늬ㆍ보상화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4세기 전반 지안 지역에서 사용된 구름무늬 수막새는 막새면을 구획하여 구름을 표현한 것으로, 중국 한대(漢代)의 전통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후 불교의 도입과 함께 제작된 연꽃무늬 수막새 역시 막새면을 구획선으로 나누고 연꽃을 배치하였습니다. 고구려 특유의 끝부분이 뾰족하고 볼륨이 높은 연판은 후대까지도 계속 이어집니다. 대체로 회색 혹은 회갈색을 띠며 표면에 석회를 칠한 것도 있습니다.

 

평양 천도(427) 이후 새로운 도읍지에 도성과 산성이 축조되고, 왕실의 절대적 후원 아래 불교가 성행하고 큰 절을 지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기와가 활발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구름무늬 대신 연꽃무늬 수막새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색조는 회흑색에서 적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점차 다양한 시문 단위가 새롭게 채용되어 복합문이 성행하는 등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고구려의 기와는 백제와 신라의 기와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김진경) 제공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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