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것도 좋습니다

2022.02.05 11:29:52

평창강 따라 걷기 9-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강의 발원지가 바뀌자 우통수가 있는 평창군은 섭섭했다. 특히 월정사 측에서 실망이 컸다. 그래서 평창군과 월정사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2015년에 월정사성보박물관 옆에 ‘한강시원지체험관’을 만들었다. 얼마 전에 내가 체험관에 들어가 보았는데, 우통수 모형관을 만들어 놓았다. 한강의 근원을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에 “오대산 수정암 옆에 물이 솟아 나오는 샘이 있는데, 색과 맛이 보통과 다르고 그 무게 또한 그러하여 우통수라 한다. 우통수는 금강연이 되고 한수(漢水)의 근원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한강의 발원지 지위를 검룡소에 넘겨주고, 이제 우통수는 한강의 ‘역사적 시원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대학 동창생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동창생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1974년 군에서 제대한 뒤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했다. 그때 동창인 ㄱ 교수를 나의 사촌 여동생에게 중매한 적이 있다. 중매는 실패하였고, 간호사였던 여동생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서 잘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ㄱ 교수가 왜 여동생이 싫다고 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전공 분야가 다르다 보니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다. 오랫동안 그것이 알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가양이 말했다.

“내일 내가 ㄱ 교수를 만나 테니스를 치기로 했는데, 물어봐 줄까?”

내가 반색을 하면서 말했다.

“꼭 한번 물어봐.”

그러자 석영이 훈수를 했다.

“그냥 물어보지 말고, ‘자네가 채였다며?’라고 물어보라고.”

역시나! 석영이 나보다 한 수 위이다.

 

한반도면이 그래도 유지되는 것은 현대시멘트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장에게 현대시멘트 공장에 관해 물어보니 최근에 한일시멘트로 합병되었단다. 작년 여름에 한반도 지형 전망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반도 지형 건너편에 커다란 공장 굴뚝 2개가 있어서 경치를 훼손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차장 관리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관리인은 한반도 지형 전망대가 개발되기 전에 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현대시멘트는 1969년에 현대건설의 시멘트 사업부가 개별기업으로 분리되어 주식회사로 설립되었다. 1964년에 단양에 시멘트 공장을 만들었고, 1992년 영월 공장을 준공하였다. 2017년에 한일시멘트에 편입되었고, 2018년에 사명을 한일현대시멘트(주)로 바꾸게 되었다. 대표 상표로 ‘호랑이표’ 시멘트가 있다.

 

한반도면은 본래 이름은 영월군 서면(西面)이었는데, 2009년 한반도면으로 변경되었다. 한반도 지형은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 있는 명승지로서 문화재청에서 2011년에 명승 제75호로 지정하였다. 년도를 보면, 현대시멘트 공장이 먼저 건설되어 지역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경제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제 와서 관광객들에게 멋진 경치를 제공하기 위하여 공장을 철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낮 2시 40분에 출발하였다. 시가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에 있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차가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길 이름이 절구지길이다. 곡식을 찧는 절구처럼 움푹하게 생긴 마을이므로 절구지 마을이라 부른다.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모두 힘들게 고개를 올라갔다. 절구지 고개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남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Y담이 나온다. 그런데 꼭 남자들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각시에게 들어보니 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마도 법당에 비구 스님들이 모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죽하면 “x 얘기를 하면 부처님도 돌아앉아서 웃는다”라는 속담이 전하여 내려올까?

 

사전을 찾아보면 절구는 “사람의 힘으로 곡식을 빻거나 찧으며 떡을 치기도 하는, 속이 우묵한 나무나 돌로 만든 통”이다. 맷돌의 설명은 “둥글넓적한 돌 두 개를 위아래로 포개놓고 윗돌의 가장자리에 손잡이 막대를 박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곡식을 넣으면서 손잡이를 돌리면 곡식이 갈려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 절구지 고개에서 절구와 맷돌 이야기가 나오자 여성 상위, 남성 상위 등등이 뒤섞여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여기에 글로 옮기지는 않겠다.

 

고개를 내려가다 앞을 보니 배거리산이 뚜렷이 보인다. 한반도면에서는 배거리산이 가장 뚜렷한 지형지물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고개를 내려가 평창강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강 건너편 배거리산에서 캐낸 석회석을 시멘트 공장까지 운반하기 위한 목적인 듯, 건물처럼 보이는 기다란 통로가 보였다.

 

 

강가로 내려가는데 왕겨를 잔뜩 덮어놓은 밭이 보인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왕겨 사이로 띄엄띄엄 식물이 돋아나고 있다. 무슨 작물일까? 석영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에 텃밭에 생강을 심어본 적이 있다. 어느 날, 사진으로 보는 생강꽃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래서 봄에 봉평장에 가서 생강을 사다가 텃밭에 심었는데, 싹이 나지를 않았다. 그때의 실패가 갑자기 생각나서 나는 순간적으로 “생강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석영이 내 말을 듣고 솔말틀(휴대폰)로 검색하더니 생강이 맞는다고 한다. 생강은 아열대 지방이 원산이어서 온도가 높아야 잘 자란다. 생강을 심을 때는 보온을 위하여 볏짚이나 왕겨를 2~3cm로 덮어주어야 한다. 여기서는 볏짚 대신에 왕겨를 덮어준 것 같다. 내년 봄에 다시 한번 생강 심기에 도전해 보아야겠다.

 

 

비포장 길을 조금 더 가다가 강가로 내려갔다. 평창강이 여울져서 흐른다. 여기가 이날 답사의 종점이다. 시계를 보니 3시 40분이다. 강의 여울이 넓다 보니 수심은 매우 얕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양말을 벗고 강으로 들어갔다. 강물에 발을 담가본 적이 언제였나? 아득히 먼 옛날이다. 도시에서 살다 보니 강물에 들어갈 일이 있을 수 없다. 도시를 떠나 평창강에 와서 강물에 발을 담그고 강물 소리를 들으니 심신이 맑아진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우리 모두는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 <동영상> 평창강 여울과 물소리 들어보기

 

 

오늘 평창강 제9구간 9km를 4시간 동안 걸었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 7월과 8월 두 달 동안은 답사를 쉬기로 했다. 9월에 평창강 따라 걷기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제9구간 답사 후기>

 

우리는 은곡의 트럭을 타고서 출발지로 되돌아갔다. 두 달 동안 만나지 못한다니 모두 섭섭해한다. 내가 회식을 제안하였다. 우리는 5시 30분에 대화면에 있는 보신탕집에서 모처럼 회식을 하였다. 보신탕을 오랜만에 먹는다는 사람이 몇 있었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보신탕을 비문명적인 음식이라고 천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세상 풍조가 이상해져서 개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애완견이라는 호칭이 반려동물로 격상되었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사람이 개를 키우는지 모시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에서 보신탕 먹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내 기억으로는, 예전에는 중병으로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은 뒤에는 의사 선생님이 “보신탕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세요”라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조상 대대로 먹어온 음식이 88올림픽 이후에 혐오식품으로 격하되었다. 지구의 기온이 높아져서 지구촌의 식량 공급이 위협받는다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도를 높이는 것은 기후 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정책이 아닐까?

 

나이 70 넘어 평창강을 따라 걷는, 씩씩한 노익장들의 회식은 즐거운 분위기에서 끝났다. 은곡은 방림면 여우재 고개에 있는 집으로 가고, 최 교수와 홍 교수는 함께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시인마뇽은 장평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군포로 떠났다. 석영과 석주는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시간이 1시간 이상 많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흥정계곡에 있는 하이디 카페로 갔다.

 

하이디 카페는 크기는 작지만 수수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인 카페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카페일 것이다. 해는 이미 산 능선을 넘어갔다. 계곡의 서늘한 어두움이 천천히 스며드는 조용한 카페에서 우리는 차를 마셨다. 카페 주인이 음악을 좋아해서 어떤 곡이든지 신청하면 찾아서 좋은 오디오로 들려준다. 우리는 옛날 노래를 한 곡씩 신청해서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옛날로 돌아갔다. 조금 쓸쓸하면서 아련하고, 편안하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평창역에서 밤 8시 53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나는 평창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씻고 나서 잠자기 전에 답사팀 카톡방에 들어가 보았다. 서울 잠실에 있는 집에 벌써 도착한 석영이 밤 10시 55분에 이날 답사의 소감문을 올렸다. 아래에 소개한다.

 

“강원도 영월에 와서 평창강을 따라 낮 종일 걷습니다. 단조롭지만 좋습니다. 강에 발 한번 담그는 것도 어찌나 큰 몸의 유열이 되는지요. 평창을 넘어 영월에 이어지는 산들은 萬古常靑(만고상청, 오랜 세월 변함없이 언제나 푸름 : 편집자말)입니다. 더불어 나도 함께 푸르고자 하오니, 강의 신이여, 내 안의 속기(俗氣)를 안개 풀 듯 풀어서 데려가소서.

 

'배거리산' 튀듯이 솟은 모습, 어려운 한자 흘립(屹立, 산이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다. : 편지자말)을 떠올립니다. 저 봉우리에 배를 걸어두면, 계곡은 이미 깊고도 깊은 바다이겠습니다. 나의 행로도 다 물 아래 있을지니, 땅과 물이 뒤집어지는 상상력, 그것으로 간신히 세상 번뇌를 몰아냅니다.

 

저녁 어둡살 낄 무렵, 카페 '하이디'에서 쓸쓸한 저녁, 차 한 잔을 나누며 노래 한 곡씩을 신청해서 듣습니다. 나는 그랜 캠벨의 'Today'를, 친구는 짐 리브스의 'He will have to go'를, 또 다른 친구는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청해 듣습니다. 정말 우리 스무 실 무렵의 옛날 노래입니다.

 

쓸쓸한 것도 좋습니다. 숲은 어둠에 녹아들고, 강은 쓸쓸히 흐릅니다. 저녁이라든지, 강이라든지 하는 것은 원래 '쓸쓸함의 정령'이 지배한다지요. 쓸쓸함과 친해지려 마음먹는 것은 내 안의 어떤 그리움을 내가 짐짓 모르고 있는 척하는 것이라고,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일러바칩니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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