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시면 부르는 노래 ‘애수의 소야곡’

2022.02.12 11:22:57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12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는 칠십이 넘으신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셨다.

사람들이 그 나이가 되면 하던 운전도 내려놓으셔야 할 나이셨지만,

당신은 그 나이에 운전학원을 다니시면서 2종 보통 면허증을 따신 것이다.

 

한국전쟁당시 보급계 부사관을 하셨던 아버지는 GMC 트럭을 몰고 다니셨단다. 우리 아버지는 이를 ‘제무시 도라꾸’ 라 부르셨다.

 

전쟁 전 따로 운전을 배우신 적은 없었지만 전쟁 당시 전방 부대에 보급품을 운반하시다가 아마 다른 운전병에게 배우셨나 보다. “면허 따위 없어도 내가 강원도 그 험한 산길로 얼마나 다녔는지 모른다.”라고 늘 주장 하셨는데, 결국에는 칠순이 넘어서야 운전면허증을 따셨다.

 

운전면허도 없던 젊은 시절에도 아버지는 운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가끔 아버지와 택시를 타고 갈 때나, 버스를 타고 갈 때, 간간이 운전사가 왜 운전을 저따위로 하느냐며 자주 불평을 해 대셨다. 나는 그렇게 투덜대는 아버지가 민망하게도 해서, “운전면허증도 없는 분이 왜 그리 다른 사람을 타박하십니까?”라며 핀잔을 드려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운전면허를 따신 아버지는 작은 자동차 하나를 사서 당신이 다니시던 곳, 전쟁 당시 전투하시던 곳에 가보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나는 결국 아버지에게 작은 자동차 하나 못 사드렸다. 내가 살면서 정말 많은 후회가 되는 것 중에 하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나는 아버지에게 자동차 사 드리면 어디를 제일 먼저 가실 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처음은 내게 이곳저곳 다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군대 가기 전 당신이 평생을 약속한 처녀를 만나러 가야만 한다고 하셨다. 그 아가씨가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셨다. 벌써 70여 년 전의 일이었는데, 아버지의 기억은 당신을 스무 살 난 청년으로 옮겨다 놓았던 것 같다. 치매가 시작된 것이었다.

 

돈 벌어서 자동차 타고 그 처녀를 만나러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셨을까?

그 여자분도 많이 늙어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을 것이라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극구 부인하셨다. 당신께서 다시 꼭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아마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러고 보면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술에 얼큰하게 취하셨을 때면, 아주 자주 부르시던 노래가 ‘애수의 소야곡’ 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처녀를 아직 못 잊어서 그러셨을까 싶기도 하다.

 

 

김동하 작가 gattoladr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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