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80m의 거대한 ‘황룡사구층목탑’

2022.02.28 14:14:22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70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자장법사가 중국으로 유학해 ‘대화지’라는 연못을 지나는데 갑자기 신인(神人)이 나와서 신라가 처한 어려움을 물었고, 이에 자장이 ‘신라는 북으로 말갈에 잇닿았고, 남으로는 왜국에 이어졌으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국경을 침해 큰 우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인은 신라가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어도 위엄이 없으므로 이웃 나라에서 침략을 도모하는 것이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라 했다. 자장은 이에 ‘내가 귀국한들 무슨 유익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되묻자 신인은 황룡사의 호법룡(護法龍)이 바로 자신의 큰아들이므로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주변 아홉 나라가 복종하며, 왕실이 영원히 편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는 《삼국유사》에 있는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우게 된 연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선진 기술을 가지고 있던 백제의 탑 기술자 아비지를 초청해 선덕여왕 12년(643)에 착수하여 645년에 완성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1층부터 차례로 일본, 중국, 오월(吳越,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 탁라(托羅, 삼국시대 제주에 있던 나라), 응유(鷹遊, 백제를 낮추어 부르는 말), 말갈(靺鞨), 단국(丹國), 여적(女狄), 예맥(濊貊) 등을 써놓았는데 이는 신라를 괴롭히는 이런 나라들을 제압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구층목탑은 규모가 엄청났는데 높이는 상륜부 42척(약 15m), 탑신부 183척(약 65m), 전체 225척(약 80m)이었습니다. 이 탑은 신라와 고려 두 왕조에 걸쳐 593년 동안 여섯 차례 중수되는 등 높임을 받아왔지만,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고 현재는 탑의 주춧돌만 남아 있지요. 1976년부터 10년 동안 황룡사터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목탑터도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앞면과 옆면은 모두 7칸의 평면형식이었고, 기단상에는 모두 64개의 주춧돌과 가운데에 하나의 중심 주춧돌이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 엄청난 규모의 ‘황룡사구층목탑’이 복원되어 자랑스럽게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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