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저 사람

2022.03.09 11:58:02

생각과 행실과 덕으로 더 어른스럽고 당당한 삶을 열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해가 바뀐 다음 아침 세수를 하면서 문득 거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갑자기 낯선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거울 앞에 다가서니 나는 보이지 않고

세월을 잔뜩 덧칠하고 있는

백발노인이 나를 보고 서 있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 '거울 속 낯익은 백발노인' / 도정기​

 

저 사람이 나인가? 왜 머리가 거의 백발인가? 얼굴은 젊을 때의 윤기가 없이 푸석하고 까칠하고 목에 주름이 많이 잡혀 있는가? 자네 누구인가? 그 사람이 대답은 안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세상에 자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렇구나. 저게 내 얼굴이구나. 내 얼굴이 저렇게 변했고 내 머리털 색깔이 바뀌었구나. 머리숱도 엄청나게 줄어들어 군데군데 맨땅이 더 많이 보인다. 머리털이 가늘고 힘이 없어져 바람에 너무 잘 날린다. 눈가에도, 입가에도 주름이 보인다. 그래, 저 안에 있는 사람이 분명 나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생경하구나. 설을 쇠고 나니 나도 확실히 이른바 세는 나이로 7학년으로 들어갔구나. 며칠 전 길을 가면서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과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게 다 그런 탓이었구나.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 1760~1815)은 지금의 나보다 20년이나 젊을 때 50을 막 바라보는 나이에도 거울을 보며 물어본다.​

 

“아! 나는 7, 8살부터 이미 너에게서 내 얼굴을 보았고, 지금까지 또 40여 년이 흘렀으니 내 나이도 50에서 하나가 부족한 것이다. 정신은 졸아들고 안색은 말라가며, 살은 쇠락하고 피부는 주름지며, 눈썹은 희게 세고 시력은 흐릿하며, 입술은 거뭇하고 이빨은 엉성해짐이 또한 진실로 예정된 것이기는 하나, 내 나이를 견주어보면 요즘 더욱 사치스럽고 영화로워진 자가 간혹 많이 있기도 한데, 어찌 오직 나에게만 늙음이 빨리 온단 말인가?” ... 이옥, `경문(鏡文)'​

 

중국 당나라 초기에 살던 유희이(劉希夷, 652~680)는 낙양성의 봄날에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백발의 노인네를 보고는 그의 슬픔을 대변하는 시를 짓는다.​

 

古人無復洛城東 낙양성 동쪽에 옛사람 다 어디 가서 없고

今人還對落花風 지금 다른 사람들이 바람에 꽃 지는 것 보네

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피는 꽃은 같아 보이지만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보는 사람들은 같지 않아라​

 

寄言全盛紅顔子 한창때인 홍안의 소년들이여

應憐半死白頭翁 곧 죽을 백두옹 가여워하겠지

此翁白頭眞可憐 이 늙은이 흰머리 참으로 가련하지만

伊昔紅顔美少年 그도 지난날엔 홍안의 미소년이었다네

                          ... 劉希夷 ‘代悲白頭翁(백발노인을 대신 슬퍼하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아 보이지만, 해마나 보는 사람들은 같지 않아라”라는 표현이 아주 쉬운 한자들의 운율을 살린 멋진 표현이라며 고금의 사람들이 칭찬했다고 하고 심지어는 처형을 앞둔 안중근 의사도 유묵을 남긴 정도인데, 저 시도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고려 때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흐릿한 거울을 달아놓고 보았다는데 그 속에 든 자신의 나이 드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나도 거울에게 묻는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다 아직 팽팽한 것 같은데 왜 자네, 아니 나만 이리 쪼그러들었단 말인가?”​

 

거울 속의 사람은 이옥에게 이렇게 매몰차게 이야기한다.​

 

“그대의 어린 시절에는 기생이 던진 꽃들이 다발을 이루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거리의 구경꾼이 나귀를 막아섰으며, 겨우 삼십을 넘어서는 과거 합격자의 반열에서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진실로 오래 머물러 주는 것이 아니며, 명예란 진실로 오랫동안 가질 수 없는 것이니, 일찍 쇠락하여 변하는 것이 진실로 정해진 이치인데 그대 어찌 절절히 그것을 의심하며, 또 어찌 우울히 그것을 슬퍼한단 말인가? 그대가 만약 묻고 싶다면 조물주에게 물어보게나.”

                                                                      ... 이옥, `경문(鏡文)'​

 

아 조물주시여? 과연 이렇게 젊을 때의 모든 아름다운 외모는 어느새 버리고 추한 늙은이로 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 당신의 뜻입니까? 18세기 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라는 글에서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곡할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흰 얼굴은 검어지는데 검은 머리는 하얘진다.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해도 눈앞의 일은 잊어버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분별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면 도리어 희미하다.’라고 했는데, 조물주께서는 이렇게 노인을 힘들고 비참하게 만들어 세상에 무슨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인지요?​

 

그렇지만 조물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심한 척 계절의 변화를 진행시키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조물주가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들은 그러한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할 뿐이다.

 

 

 

이제 당신 노년이라는 경지에 접어들었소. 싫건 좋건 그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요. 80, 90을 넘어 백 수가 많아진 때긴 하지만, 또 당신보다 한창 선배들도 여전히 활기차게 잘 지내시는 것을 보고 있지만, 이제 7학년 정도면 노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좀 그렇다고 해도, 노년에 접어든 것은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런 노년이 시작되면 당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오는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당신의 얼굴과 기운이 젊을 때와 달라진다는 것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젊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조물주가 하루의 변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실감하도록 해주고 있는 것을 인정하라.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자기 몸을 떠나, 다른 자기의 삶이 보인다는 것일 게다.

 

노년은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고 일에서 해방됨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노년이 좋은 점이 아니겠는가? 가족 부양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오직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의무에서 해방되어 아무 할 일이 없는 날이 오면 공허함을 느낀다. 무료한 시간은 값어치를 잃고, 시간은 흔적 없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우리는 그 안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다. 그러기에 노년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과거와 화해하고 다가오는 자유로운 시간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려는 노력을 찾아서 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타박하거나 그것으로 해서 시간을 눈 뜨고 흘려보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50년 전만 해도 우리 평균 수명은 50을 겨우 넘을 정도였다. 그때는 환갑 나이가 장수의 상징이었다. 모든 가족과 동네 일가친척에게 축하를 받았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80을 넘었다. 자연스럽게 백세시대가 기대되고 고령인이 급증하는 현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나이에 대한 통념이 크게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옛날 70대와 지금 70대는 근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 건강 상태도 크게 개선되어 있고 아직도 삶의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이라는 숫자적 압박으로 스스로 옥죄고, 스스로 포기하고 망설이는 것에서 스스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어느 분은 말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를 ‘나이를 먹는다’는 능동적인 인식을 통해 스스로 내 역량을 키워가는 당당함을 택하라고. 그분은 말한다. 한 살 더 먹으면 더 어른스러워지고 더 당당해지고 더 자랑스러워지는 모습은 어떤가?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내가 자신있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한 해를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렇구나. 그 수밖에 없겠구나. 우리들의 육체가 시들어 나뭇가지처럼 거무튀튀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듯 보이지만 봄이 되면 검고 메마른 듯한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듯이 우리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는가?

 

거울에 비친 허연 머리의 외모에 집착하지 말고, 육체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또 자식 손주들에게 이 세상을 넘겨준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남은 시간에 몸으로 무엇을 얻는다기보다는 생각과 행실과 덕으로 더 어른스럽고 당당한 삶을 열어 가보는 것이다.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고, 기회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그냥 막 보내지 말고 버렸던 자기 꿈을 다시 밝히고 그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보는 거다. 봄에 가지마다 새 꽃이 피듯이 우리도 여전히 새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허연 머리털에 놀랐던 노인은 비로소 안심하고 거울을 떠날 수 있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