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유로를 들였지만 사용하지 않은 원전

2022.03.10 11:39:31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6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때는 유럽의 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완공되고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핵 없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35㎞ 떨어진 곳에 있는 츠벤텐도르프 원전(Zwentendorf Nuclear Plant)은 1978년 완공된 오스트리아의 첫 원전이다. 핵연료 반응을 조절하는 제어봉 등 여러 주요 시설이 해체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지만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에서 국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 역사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자 “값싸고 깨끗한” 원자력 발전이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4~6개의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자력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깨끗한 에너지원은 아니었다. 원전에서 대기오염물질은 나오지 않지만 방사능 오염과 안전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오스트리아에서 반핵 운동이 일어났다. 여러 도시에서 원전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대와 경찰들 사이의 무력 충돌이 뉴스에 빈번히 보도됐다.

 

 

결국 이 문제는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978년 11월 5일 이루어진 국민투표 결과 불과 0.9%(약 2만 표) 차이로 원전 가동이 무산됐다. 원전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동안 들었던 비용이 10억 유로(한화로 1조 3,000억 원)가 넘었지만, 오스트리아 국민은 환경과 후손을 위해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이어서 오스트리아 국회는 1998년까지 20년 동안 핵발전을 금지하는 “원자력 사용금지법 (Atomsperrgesetz)”을 1978년 12월에 통과시켰다.

 

원전 금지를 결정한 뒤에 오스트리아는 1980년대부터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집중했다. 1986년에 (구)소련의 연방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Chernobyl)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오스트리아 국민 사이에는 탈원전을 넘어서 반핵 정서가 확산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지역을 빼고 방사성 낙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반핵 여론이 강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어지자 오스트리아 국회는 1997년에 만장일치로 계속 핵 없는 나라로 남기로 했다. 2020년 기준으로 오스트리아는 소비 전력의 7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어서,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최강국임을 자랑하고 있다. (EU 국가 전체의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7%다)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 국민은 탈원전 선택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원전 시설들은 어떻게 되었나? 츠벤텐도르프 원전은 2005년 오스트리아 주요 에너지 공급업체인 EVN이 인수해 독일 원자력 기술자들이 원자로 작동 방법을 학습할 수 있는 교육 시설로 전환했다. 2009년에는 태양에너지 패널 1,000개를 지붕에 설치해서 흥미롭게도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원전으로 변신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선택한 친원전 정책을 탈원전으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원자력업계와 건설업계 그리고 보수 언론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였다. 제20대 대통령 후보들의 원전에 관한 공약은 어떠했는가? 윤석열 후보는 친원전 정책으로의 회귀를 주장했고, 이재명 후보는 ‘감원전’이라고 용어를 바꾸었지만, 내용은 탈원전 정책의 계승을 주장했다.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였으므로 새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단한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을 다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일보는 2018년 6월 26일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정부의 성급한 ‘탈(脫)원전 정책’ 추진으로 조만간 취소 결정이 유력한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총사업비 8조2,600억 원)의 매몰비용이 ‘6400억 원+α’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보도하였다.

 

그러자 사업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신한울 3,4호기는 실시계획 미승인에 따른 착공 전 단계로 기자재 및 시공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기자재 납품은 없었으며, 원자로 관계시설도 설치된 바 없다. 신한울 3,4호기에 투입된 비용은 1,777억 원인데 이것은 터 매입 비용이 아니라 인허가 신청 관련 용역, 설계용역, 인건비 등과 관련된 것이다“라고 보도 자료를 통해 밝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신한울 3,4호기의 매몰 비용의 크기다. 백과사전에서는 경제학 용어인 매몰 비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미 지급되어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이미 지급된 매몰 비용에 대해서는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현재 시점에서 아무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어서 매몰 비용과 관련된 기회비용은 0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매몰 비용에 집착하면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미 투입한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함으로써 결국 손실을 키우는 경우를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말한다.

 

사업 담당자인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 사업에 투입된 매물 비용은 1,777억 원이다. 그런데도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 신문들과 보수적인 언론에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위해 매몰비용과 관련하여 과장된 기사를 계속 쏟아낼 것으로 우려된다. 현명한 국민은 사실을 확인해야만 한다.

 

매몰 비용 1,777억 원은 어찌 보면 큰돈이다. 그러나 두 개의 원전을 완공하려면 추가로 8조원을 투입하여야 한다. 1,777억 원이 아까워서 추가로 8조 원을 들여야 하는지 경제성 분석을 제대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설혹 경제성이 있더라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 심각한 고려를 해야만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지난 3월 4일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세계를 경악하게 하였다. 만일 화재가 원전 사고로 이어지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보다 10배나 더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염려된다.

 

지금부터 44년 전인 1978년에 10억 유로의 매몰 비용을 감수하고서, 완공된 원전의 폐쇄를 선택한 오스트리아 국민을 생각하자.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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