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를 쓴 소설가 <삼대>의 염상섭

2022.03.13 22:12:31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70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평화의 제단에 숭고한 희생으로서 바친 3천만의 망령에 의하여 가장 웅변으로 또 가장 통철히 오인(吾人)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실로 민족자결주의란 오직 한마디다. 일본은 입을 모아 조선을 혹은 동족(同族)이라 말하고 동조(同祖)라 역설한다. (가운데 줄임) 우리 한국은 4천 3백 년이란 존엄한 역사가 있는데 일본은 한국에 뒤지기가 실로 3천여 년이다. 이를 봐도 조선민족은 야마토(大和)민족과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것을 췌언(贅言, 장황하게 말하다)할 필요도 없는데 합병 이래 이미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은 조선에 임(臨)함에 얼마나 참학(慘虐)과 무도(無道)를 극(極)하였던가.(뒷줄임)” -재 오사카 한국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

 

이는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이 쓴 <독립선언서> 가운데 일부입니다. 염상섭은 1919년 3월 19일 저녁 7시 무렵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공원에서 독립선언을 거행할 목적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8시쯤 집회 장소에 모인 참가자 22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감옥생활을 해야 했지요.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염상섭이 <독립선언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염상섭은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3·1만세운동 직후 지식인이 겪은 번민을 차가운 시각으로 생물을 해부하듯 임상학적인 수법으로 그려내 우리나라 첫 ‘자연주의 작가’라는 평을 듣습니다. 그 뒤 염상섭은 1931년 서울의 중산층인 조씨 일가 삼대가 겪는 갈등과 몰락 과정을 그린 그의 대표작 <삼대(三代)>를 발표하지요. 이후 <목단꽃 필 때>, 소년 소설 <채석장의 소년>, 〈취우(驟雨)〉 등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그는 문학활동 말고도 1920년 〈동아일보〉가 창간되자 정치부 기자가 되었고, 이후 조선일보, 매일신보에 근무하다 1936년 만주 만선일보 편집국장에 초대되었으며, 1946년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맡는 등 언론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다만 <독립선언서>를 썼던 염상섭이 만주 만선일보 편집국장 당시의 행적으로 친일 의혹이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59년 전인 1963년 오늘(3월 14일)은 염상섭이 예순여섯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 날이지요.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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