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형제

2022.03.16 11:34:20

아사카와 다쿠미, 아사카와 노리타카(형)
[맛있는 일본이야기 64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1891-1931)를 아는 한국인들은 많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 아사카와 다쿠미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건너와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조선의 문화에 애정을 갖게 되는데 특히 백자에 쏟은 그의 사랑은 《백자의 나라》라는 책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식민시기에 조선에 건너온 많은 일본인들이 게걸스럽게 값나가는 고문서와 도자기, 민예품을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견주어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것은 조선에 두어야 한다.” 는 지론으로 자기가 모은 조선 민예품은 물론이고 자신의 육신마저 조선땅에 묻히길 바랐으니 그의 ‘조선사랑’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아사카와 다쿠미에게는 노리타카(伯教, 1884-1964) 라는 7살 위의 형이 있는데 형 또한 동생 못지않은 '조선을 사랑한 사람' 이다.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조선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다쿠미의 형에 관해서는 《조선의 미를 찾다 :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동생 다쿠미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더불어 조선 전통문화와 미술공예를 연구하고 그 미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모았던 사람이다.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당시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도자기의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1920년대 조선 도자기 붐을 일어나게 했다는 점, 한반도 내에서도 조선의 미술공예를 매개로 당시 재조일본인 문화인들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는 점, 조선 도자기 연구뿐만 아니라 화가, 조각가, 도예가로서 조선인과 조선 문화를 제재로 한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아울러 일본 전통시가 가인(歌人)으로서 조선 미술공예를 통해 조선의 미를 적극 노래했다는 점, 일본 패전 이후에도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1946년 가을까지 한국에 남아 조선 미술공예품을 한국의 국립민족박물관에 안전하게 이관하는 등 조선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알리기 위해 크나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조선의 미를 찾다 :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를 쓴 정병호, 엄인경 씨는 이 책이 “일제강점기라는 엄중한 현실에도 조선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와 조선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려는 노리타카의 노력을 통해 조선문화에 대한 한ㆍ일 상호 이해가 주는 긍정적 효과와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 상황 아래서 조선땅에 건너와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다쿠미와 노리타카! 그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일에서 부터 그들의 삶은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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