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가락은 창부(倡夫)타령의 전주곡?

2022.03.22 12:41:53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6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는 전라도 지방의 소리라 할 만큼 그 지역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법(語法)으로 부르는 소리제다. 가사의 발음이나 독특한 사투리, 억양, 떠는 소리나, 꺾어 내리는 소리 등이 다른 지방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건자의 목청은 맑고 고운 편이어서 판소리보다는 경기소리에 어울리는 목이다. 연말 모임에서도 그는 판소리 대신, 자신이 어려서부터 불러오던 <창부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했다는 얘기다.

 

사람에게는, 특히 소리꾼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 법이다. 이건자는 <창부타령>이 목청에 맞고, 또한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이 노래를 불러왔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명동으로 구경나갔다가 우연히 참여하게 된 노래자랑에서도 많은 사람을 제치고 1등의 영예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창부타령>이란 어떤 노래인가?

 

신명 나는 가락과 흥겨운 장단으로 짜인 이 노래는 <노랫가락>과 함께 서울, 경기지방을 대표하는 민요다. 직장이나 공공의 일터, 각종 놀이가 벌어지는 판에서는 실로 많은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무대에 서게 되는 경기명창은 창부타령만을 별도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는 먼저 노랫가락을 불러 보면서 숨을 고르거나 목을 푼 다음에 본격적으로 창부타령을 부르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다.

 

 

그러므로 경기민요 창자들에게 있어 <노랫가락>은 마치, 판소리 창자들이 긴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푸는 <단가(短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목소리의 상태나 호흡, 또는 노래의 고저나 가락의 표현, 강약, 기교, 등등을 동시에 무대 위에서 확인할 방법은 간단한 노래를 어색하지 않게 불러 보는 방법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래서 가곡과 같은 긴 노래를 부를 때에도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다스름이나 대여음(大餘音)을 듣고, 노래의 빠르기나 높이에 맞춰 시작하는 것이다.

 

경기민요 연창에 앞서 불러 보게 되는, 곧 전주곡에 해당하는 노랫가락은 조선조 말엽, 대궐 출입이 잦은 무녀(巫女)들이 임금에게 들려 드리기 위해, 고상한 시조시를 얹어 부른 뒤로부터 널리 유행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랫가락의 사설은 반드시 3장 6구체의 시조 시(詩) 이어야 하고, 종장의 마지막 3음절의 생략법도 시조창과 비슷하다.

 

그러나 시조창은 느리고 한가한 장단으로 부르지만, 민요로 부르는 노랫가락은 선율의 구조도 다르고, 또한 경쾌하리만큼 거뜬거뜬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객석의 호응이 높은 편이다.

 

 

옛사람은 소위 정가(正歌)에 속하는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형태의 음악을 <노래>라 했고, 창(唱)이나 잡가, 민요 등은 소리라 했다. 그러므로 노랫가락의 노래는 시조시를 얹어 부르는 관계로 <노래>라고 칭한 것이며 가락은 선율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랫가락이란 이름은 시조시를 읊은 가락이라는 뜻이 된다.

 

민요의 명창들이 무대 위에서 부르고 있는 시조시는 약 100 여수에 달한다. 처음 시작은 중간음에서 평이하게 시작, 중장 첫머리에서 고음으로 치고 올라간 다음, 평으로 내려오고 다시 종장에서 들어 올린 다음, 천천히 하행하는 형이다.

 

다음은 이건자 명창이 즐겨 부르는 노랫가락 몇 수를 선정, 이를 감상해 보기로 한다.

 

“충신은 만(滿)조정(朝廷)이요, 효자 열녀는 가가재(家家在)라.

화형제(和兄弟) 낙처자(樂妻子)하니, 붕우유신(朋友有信) 하오리라.

우리도 성주 모시고 태평성대를 누리리라.”

 

위의 노랫말은 매우 건전한 내용이어서 많이 애용되고 있는 편이다. 뜻은 충신은 조정에 가득하고, 효자와 열녀도 집집이 존재하고 있으며, 형제간에 화목하고 처자가 즐기고 친구 사이는 믿는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우리도 훌륭한 임금 모시고 태평성대를 누려보자는 내용이다. 가사의 내용이 건전하고 바람직한 내용이어서 민요 창자들이 처음에는 이 가사를 많이 택하고 있는 편이다.

 

 

“울 밑에 벽오동 심어 봉황을 보렸드니,

봉황은 제 아니 오고, 날아드니 오작(烏鵲)이로다.

동자야, 저 오작 쫒아라, 봉황이 앉게,”

 

위의 노랫말은 재미있다. 봉황은 아무나무에 앉지 않고 꼭 오동나무 위에만 앉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봉황을 보기위해 벽오동을 심었으나, 기대했던 봉황은 오지 않고 까막까치가 날아드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봉황이 앉도록 저 오작을 쫓아내라고 하는 내용이다.

 

또한 다음의 노랫말도 자연의 현상이나 흐름을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있어서 창자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백운, 곧 흰 구름이 하늘에서 허우적거리며 내린다는 표현이 매우 시(詩)적이다.

 

“바람이 물소린가, 물소리 바람인가,

석벽에 달린 노송 움츠리고 춤을 추네,

백운이 허우적거리고 창천에서 내리더라”

 

아래의 노랫말은 비교적 자주 듣게 되는 친숙한 내용으로 꿈속에서 만난 임을 보내지 말고, 잠든 나를 깨워 임을 만나게 해 달라는 애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꿈속에서 만난 연인을 아쉬워하며 다음에는 임을 못 가게 잡고 잠자는 나를 깨워달라는,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연정을 느끼게 되는 노랫말이다.

“꿈아 무정한 꿈아, 왔던 님을 왜 보내나.

오신 님 보내지 말고 잠든 나를 깨우려마.

일후에 임이 오시면 임을 잡고서 날 깨워 주렴.”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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