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량 조금산

2022.03.25 11:29:23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9]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부지깽이도 모 찌러 가는 오뉴월 한방장을

 

훠이훠이 풍채 좋고 신수 훤한 조한량 거동 보소. 풀 멕인 도포 입고 꿩털 처억 높게 꽂은 중절모 눌러쓰고, 명무(名舞)에 붓 한 자루, 손기름 자르르 밴 단소도 동무하니 이만하면 근 달포 지낼 노자 마련은 되었것다. 오냐 가보자 어여 가보자 물 뎁히지 않아도 암탉이며 도야지 솜털까지 죄다 벳긴다는 돈 많고 한량 많은 동래하고도 펄펄 끓는 온천장이 아니더냐. 왜인(倭人)들 떼로 몰려 떼돈 쓰고 나자빠지는 동래 권번(券番)이 거기라면 오냐 놀아보자 화선지 펼쳐놓고 치자 하면 설중매에, 쓰자 하면 초서에다 추어라 하면 나붓나붓 춤사위도 으뜸이니

 

보아라, 천하의 조금산이 풍류여행 떠나신다

 

 

※조금산 : 호는 금산, 이름은 조용배 (趙鏞培1929-1991). 고성오광대를 이끌던 예인.

 

 

<해설>

본격적으로 오광대놀이에 들어가기 전에 중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시조다. 지난 회에 실었던 「길 떠나는 광대」가 4수의 평시조를 엮은 연시조라면 이번 것은 사설시조다. 초장과 종장은 평시조 형식을 따랐으나 중장을 길게 늘여 넌출넌출 앞말이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섬기며 넝쿨처럼 이어지는 사설의 특징들을 살려보려 노력했다.

 

허종복, 허판세, 이금수 씨 등 1세대 연희놀이판을 휩쓴 분들은 여럿이었으나 맨 먼저 조용배를 떠올렸다. 등장인물 모두를 시화하기엔 무리가 있고, 큰 재미도 없을 듯하여 대표적 인물 두 분을 시 속에 모셨는데 이 작품이 그중 하나다.

 

금산 조용배는 오광대춤에 다 능했다 하며 특히 승무와 문둥북춤이 장기였다고 한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춤꾼이었으나 무대를 휘어잡은 춤꾼이라면 틀림없이 풍채 좋고 인물 훤했으리라 생각된다. 모르긴 해도 한가락 하는 한량으로서 마당에서뿐 아니라 기방이나 어디서든 이름깨나 날렸을 터였다.

 

이런 한량을 두고 “부지깽이도 모 찌러 가는 오뉴월 한방장을”이란 초장이 나왔다. 당시 오뉴월은 모를 찌고 심는 매우 바쁜 나날이었다. ‘모심기’가 시작되면 농가엔 어른, 아이 없이 다 정신없이 바쁘다. 그래서 부지깽이도 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시절을 ‘한방장’(‘한창 바쁜 나날’을 뜻하는 경상도 지역 사투리)이라고 했다.

 

춤꾼에겐 농사일보다 춤추는 일이 중하지 뭐가 중할까. 이런 상상으로 조용배를 불러내었다. 어쩌면 그는 논일에 한창인 사람들을 뒤로한 채 신작로를 걸어 고성읍에서 버스 타고 놀기 좋은 동래 권번을 찾지 않았을까. 풀 먹인 도포에 중절모 눌러쓰고, 한 보름 놀다 올 노잣돈과 단소와 붓 한 자루 넣은 가방 들었으니 뒤돌아볼 일도 아니다. “오냐, 좀 놀아 본 한량들 모인다는 동래 온천장이라면 내가 다 접수하고 말리라.”라는 마음으로 떠나지 않았을까.

 

혹시 돈 놓고 돈 먹는 왜인이 있다면 “너 맛 좀 봐라” 하며 멋진 글씨에 춤사위로 권번 떠들썩 놀아버려도 통쾌한 일이 아니고 뭔가. 이 시 역시 작곡가 전욱용에 의해 작곡되어 노래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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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 시인 moon15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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