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없어도 꽃잔치는

2022.05.18 12:39:23

올가을에 사과 못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구나!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4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필자가 매일 아침 올라가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꽃잔치다. 초봄처럼 잎이 없는 꽃들이 아니라 잎이 무성한 가운데 피는 꽃이고, 그 가운데 대표가 아카시다. 꽃다리마다 층층이 꽃줄이 있고 그 줄마다 꽃들이 활짝 피어났는데, 우유빛 뽀얀 색깔만이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진한 향기에 길 가는 사람들의 취각이 마비되는 듯,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필자는 일 년 가운데 아카시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이때가 가장 싫다. 왜냐하면 냄새를 잘 구분 못 하는 취약(臭弱)이란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조리사 가운데 냄새를 잘 못 맡는 분이 있다는 것은 제법 알려졌지만, 필자도 이미 예전 파주 쪽에 살던 2000년 초 요맘때 출근길에 아카시 냄새를 맡니 못 맡니 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기에 새삼 겁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다 맡는 냄새를 제대로 못 맡으면서 냄새가 어쩌니저쩌니 하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발한 아카시 꽃을 보면서 예전처럼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정도 만발하면 벌들이 날갯짓하면서 이 맛있는 꽃의 꿀을 따야 할 터인데 그게 없더라는 것이다. ​

 

사실은 한식이 낀 지난달 초 성묘를 위해 서울 근교의 공원묘원을 찾았다가 기름으로 굽고 볶은 제수를 상석에 펼쳐놓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술을 올렸는데, 벌이 한 마리도 오지 않았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성묘에 가면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벌이 있을까 봐 어린 손주들에게 손으로 뿌리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서 벌이 날아가기를 기다리라고 가르쳐 주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벌이 없으니 가르쳐주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아파트 단지에도 꽃나무가 많이 있어서 지난달 중순부터 약간 늦게 매화, 벚꽃, 개나리, 이팝꽃, 목련 들이 정말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옆을 지나면서도 벌은 볼 수가 없었다. 그 꽃들이 거의 다 질 때까지 아예 벌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벌이 사라졌다"라는 소식 그대로가 아닌가?

 

 

그래서 당시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졌다는 뉴스에 주목하기도 했다. 벌통을 채우고 마냥 날아다녀야 할 꿀벌들이 그냥 사라졌는데 전국에서 78억 마리, 혹은 80억 마리가 사라졌다는 추정도 나왔다. 이것이 무슨 일일까? 왜 벌들이 없어진 것일까? 물론 올해만 특별히 문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막상 피부로 느끼니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벌들이 대규모로 사라지는 현상은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미국에서 많이 발견돼, 이러한 현상을 CCD(COLONY COLLAPSE DISORDER)라고 부른다고 한다. '벌집단의 붕괴 무질서'라는 뜻으로서 우리 말로는 '벌떼 폐사 장애', 혹은 어려운 말로 '군집붕괴현상' 이라고도 하는데, 2006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돼 2007년에는 유럽으로 번졌고 미국에서는 특히 서해안과 동해안 양봉가가 상업적으로 키우는 벌 중 60∼70%를 이렇게 잃었다고 한다. 물론 이 현상은 영국과 독일,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로 번졌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원인이라는 것이 확실히 밝혀지면 대책이라도 세우련만 그게 아니니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독일 란다우 대학의 연구진이 손말틀(휴대전화)이 근처에 있을 때 벌들이 길을 잃고 벌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론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를 한 요켄 쿤 박사는 휴대전화가 CCD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4년 뒤에는 손말틀이 벌의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다시 발표됐다.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손말틀을 쓸 때 주위의 벌들이 지나치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벌을 비롯해 곤충들이 소리를 통해 소통하는 과정에서 손말틀의 전자파가 소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벌들의 집단 폐사가 처음 확인됐고, 2011년에는 농약, 2012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공사장 소음과 진동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최근에는 피해 농가의 벌에서 날개불구바이러스가 검출됐고 일부 농가에서는 다른 바이러스도 몇 종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바이러스가 벌들이 사라진 원인으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가 있다고 무조건 발병하는 게 아닌 데다, 사체가 광범위하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농약 피해도 적잖게 나왔지만, 농약에 중독된 벌은 혀를 내밀고 죽는데, 이런 사체가 많지 않았기에 이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어쩌면 이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안해지는가? 가장 큰 걱정은 어쩌면 이러다가 우리가 맛있는 과일도 못 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장 초보적인 걱정 때문이리라. 꿀벌들은 자기들의 식량을 얻기 위해 속씨식물의 꽃 속으로 드나들면서 꽃가루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꿀벌이 1kg의 꿀을 얻기 위해 약 4만km를 이동할 정도로 광범위한 활동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들이 묻혀 다 주는 꽃가루로 해서 과일이 열리고 숙성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과일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원초적인 불안이 오는 것이다.​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숫자가 줄어들다가 이 꿀벌이 멸종되어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게 한낱 기우이면 다행이겠다. 어떤 과학자들은 꿀벌이 없으면 사람도 못 산다고 말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농작물의 75%가 꿀벌 등의 꽃가루 매개 활동에 의존하며, 꿀벌이 사라지면 세계의 식량 생산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감소한다. 나아가서 생태계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류가 벌의 멸종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이 큰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말과 같다.​

 

사실 다른 원인이야 그렇다고 처도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며 하루, 아니 한 시도 그것 없이는 못 사는 손말틀이라는 이 괴물이 꿀벌의 실종에 영향을 주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손말틀의 극초단파가 꿀벌의 생활영역을 침범해서 그들의 생체리듬이 깨지고 소통수단이 망가지도록 해서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손말틀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 인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꽃이 피어도 벌이 없어 수정이 안 된다면 어쩌면 예전에 우리들이 송충이를 잡으러 젓가락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고, 쥐를 잡으러 쥐잡기 운동을 한 것처럼, 모두가 붓을 들고 과일나무의 꽃으로 가서 화분을 옮겨주는 전국민운동을 해야 하나? 아니면 아주 작은 드론을 수천만 개 만들어 이 드론이 꽃속에 들어가 벌과 같은 역할을 해 주도록 드론을 빨리 만들어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아카시 꽃을 따는 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을 했더니 그것을 본 한 학자분(신문방송학이라 전공이 다른데 요즘엔 사과 농장의 주인이시니 꿀벌과 관련이 있다고 할까?)이 이런 반응을 보내주신다.​

 

저희 사과꽃 피었을 때도 벌이 없다고 해 걱정했는데 그런대로 수정은 잘 됐습니다. 사실 가끔가다 벌이 한 두 마리 보였거든요. 핀 꽃의 양에 비해 벌이 적어 잘 안 보일 뿐이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과수원 입구에 들어서면 아카시아 향이 진동합니다. 그런데 아카시아가 피면 사과 솎기를 해야 해 사과농사 1년 가운데 가장 바쁜 시기라 피곤하고 걱정이 많은 사과농부에겐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이 낭만적으로 안 보이고 '~~ 망할 놈의 과수원 길'로 보입니다 ​

 

아, 그런가? 벌이 조금 없어져도 또 자연은 다른 치유법을 만들어내는가? 그렇다면 올가을에 사과 못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구나. 내년에 붓을 들고 과일농장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구나. 아무튼 평화로운 이 봄, 봄꽃이 다 떨어지는 즈음에 정말 기우(杞憂) 같은 그런 걱정에 공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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