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백인영의 산조, 김계옥의 25현가야금 배워

2022.06.21 11:05:57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8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출강>의 작곡자 김용실이 거문고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곡을 지었다는 이야기와 이민영이 25현 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고, 연주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 원곡을 25현 가야금으로 편곡하면서 이민영은 가야금 <산조>에 보이는 연튀김 주법이라든가, 양손을 동시에 활용하는 수법 등을 다양하게 살려 보았다고 한다.

 

가야금은 신라시대 이래 현재까지 열두 줄을 지닌 현악기이다. 이를 법금(法琴)이라 부른다. 주로 정악(正樂)에 사용되어 오다가 19세기 중엽, 산조가 연주되면서 가야금의 체제가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래 산조(散調)라는 음악은 <헛튼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했을 만큼, 연주자의 즉흥성이 강조되는 음악이다. 더욱이 가야금 산조의 경우에는 줄을 풀고 조이는 능력을 통해서 듣는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이완시켜 주는 즉흥적 요소를 발휘하는 민속기악의 대표적인 음악이다.

 

산조의 음악형식은 만(慢)-중(中)-삭(數), 곧 느리게 시작해서 보통의 속도를 지나 더욱 빠르게 이어가는 틀을 지닌 음악이다. 이처럼 즉흥으로 진행되는 가락이나 구성음들의 운동모습이 절묘해서 이를 자연스럽게 표출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명인들은 “되도록 어린 시절에 일찍 산조 음악을 경험하는 것이 산조에 접근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해 오고 있다.

 

다행히 이민영은 초등학교 때, 성금연류 짧은 가야금 산조를 배웠고, 그 뒤에 김죽파류도 배웠으며,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는 백인영을 만나 유대봉류 가야금산조의 주법 교정과 시김새, 표현법 등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민영의 산조음악은 그 음악에서 백인영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는 점을 알게 하는 많은 사례를 남기고 있다. 그 단편적인 예로 이민영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전에서 열린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로 출전하여, 기악 대상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 <남원 춘향제> 국악경연에서 일반부 대상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또 인도-푸나에서 열리는 즉흥음악 페스티벌에서 스승과 함께 <아유타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는 음반을 제작하고 돌아온 점, 지난해 4월 가야금 유파별 발표회에서 유대봉제 백인영 류 가야금 산조를 이어가고 있는 차세대 연주자로 선택을 받은 점, 등등이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님을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민영의 가야금 스승, 백인영이야말로 제자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 명인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자들의 학습의욕을 높이고, 발표기회를 확대해 주기 위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가야금 연주단체인 <예랑>을 창단하게 된 점이라 하겠다.

 

그해 <예랑>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지면서 그 실황 녹음을 CD로 발매해서 국악계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뒤에도 전주 삼성문화회관 초청공연이나, KBS국악관현악단 특별공연과 같은 비중있는 무대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연주단체로 주목을 받아온 것이다.

 

 

백인영의 또 다른 제자 사랑은 전국 경연대회에 출전한 제자들을 위해 직접 장단을 쳐 주는 고수(鼓手)의 역할을 즐거이 맡아 왔다는 점이다.

 

음악을 훤히 꿰고 있는 스승이 직접 장단을 잡아준다고 생각해 보라. 출전한 제자들은 마치 학원에서 연습하듯, 긴장하지 않고 실력을 발휘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수상 대열에 오른 제자들이 많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미국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해외 공연에 참여하여 연주 경험을 쌓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백인영은 적극적이었던 스승이 아니었던가 한다.

 

백인영에게 산조 음악을 배웠던 것처럼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중국에서 초빙된 김계옥 교수를 만나 그로부터 25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민영은 새로운 악기, 새로운 음악세계에 심취해 가고 있었다.

 

 

그가 새롭게 만난 25현 가야금은 기존의 12현 가야금과는 전혀 다른 악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25현 가야금은 단순하게 줄의 수효만 확대된 것이 아니고, 12현금에 견줘 더욱 넓은 음역, 음량의 확대, 양손으로의 연주, 화음처리, 다양한 연주법, 등 전혀 다른 형태의 가야금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국악계에서는 국악기 개량 운동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가야금의 경우에는 15현, 18현, 21현, 22현, 25현 등, 다양한 변형의 악기들이 실험적으로 제작되었으나, 현재의 창작음악은 25현이 일반화되었다.

 

이민영의 고백이다.

 

“김계옥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새로운 악기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12현가야금도 줄이 많은 편인데, 그 두 배가 넘는 25현의 악기이니만큼 주법이나 기교가 힘들고 까다로웠어요. 정신이 없었지만, 그러나 연습한 만큼 재미도 있어 저도 모르게 25현금에 빠져들고 있었어요. 가야금 인생의 승부를 걸 만큼 새로운 악기와 악곡에 대한 연습과 연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요.”

 

그의 노력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4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한 교류음악회> 2005년 2월, 미국 UCLA에서 개최된 <제5회 Korean Music Symposium> 기념 연주회, 7월, 연변예술대학과의 <학술 및 실연교류회> 연주, <베트남 하노이 대학> 연주회 등에서 그의 활약상은 더욱 눈부실 정도였다.

 

현재 이민영이 사는 전통예술의 도시, 남원은 국립이나 시립 규모의 연주단체가 있고, 그 활약상으로 전통음악을 즐기는 수준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이민영의 가야금 창작곡 공연, 그것도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25현금 음악이 활성화된다면, 더더욱 풍성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급부상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창작국악의 공연 시도는 남북한의 이해와 긴장완화, 그리고 정서적 교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확신한다.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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