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속 ‘공신’들의 공부 비법

2022.07.04 12:03:26

《공부도사(한국사 인물 10인의 공부 비법)》 윤희진 씀ㆍ김소희 그림, 낮은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공부의 신’.

흔히 수능 만점자나 고시 합격자가 나오면 세인들은 그들을 ‘공부의 신’, 약칭 ‘공신’이라 칭하며 앞다투어 공부 비결을 묻는다. 그러면 대개 “교과서 위주로 정독했다”라거나 “참고서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으며 폭넓게 공부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공부법은 너무 평범한 듯해서 오히려 ‘그냥 하는 말이려니’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뜻밖에 평범한 공부법 속에 진리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 책, 《공부도사-한국사 인물 10인의 공부 비법》에 소개된 우리 역사 속 공부 천재 10인의 공부 비결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공신’들의 공부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우리 역사상 공부로 이름을 날린 10명을 가려 뽑아 이들의 핵심 공부법을 짚어낸다. 세종의 ‘깊이 읽기’, 이황의 ‘사색’, 이이의 ‘궁리’, 이익의 ‘몰아치기’, 안정복의 ‘메모’, 박지원의 ‘창의력과 진솔함’, 정약용의 ‘질문하기’, 이규경의 ‘분류와 정리’, 안창호의 ‘연설과 토론’, 신채호의 ‘속독’이 그것이다.

 

옛 선현들의 공부법은 오늘날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훨씬 더 집요한 데가 있었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책과 온라인 강의, 학습 보조자료가 없던 시절에는 적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그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 방법이 주효했다. 가령 자타공인 조선 최고 천재라 할 만한 세종은 한 책을 묻고 따져 가며 백 번씩 읽었다.

 

이황 역시 한 구절을 놓고 깊이 곱씹어 생각하고, 끊임없이 사색하는 ‘사색 학습법’의 대가이자 평생 꾸준히 공부하는 평생학습을 실천했다. 이이는 책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있게 읽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깨달음에 그치는 공부가 아닌, 현실에 적용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부를 지향했던 이이다운 가르침이었다.

 

한편 아버지 이하진의 귀양지였던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나, 학문이 뛰어났던 둘째 형 이잠마저 정쟁에 휘말려 죽임을 당하고 벼슬에 뜻을 접은 이익은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공부의 대가였다. 여든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익은 성리학, 문학, 예학, 천문, 지리,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실용적인 학문, 곧 ‘실학’의 거두로 우뚝 섰다.

 

이익이 남긴 《성호사설》은 자그마치 3,007편의 글로 구성된, 당대 지식과 정보를 총망라한 백과사전이었다. 이익은 자신의 공부법을 달릴 ’취’, 나아갈 ‘진’을 써서 ‘취진(驟進)’으로 불렀다. 매일 조금씩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꺼번에 온 힘을 다해 몰아쳐서 하는 공부가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었다.

 

(p.60-61)

…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 여유있게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스스로 태만하려는 구실이다. … ‘취진’ 두 글자가 가장 잘 말한 것이니, 꼭 이렇게 하여야 한다. 마치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쓸 때 거침없이 몰아치듯이, 혹독한 관리가 법을 쓸 때 매섭게 적용하듯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치 큰 돌을 굴릴 때, 오늘 한 번 밀어 보고 내일 한 번 밀어 보기를 날마다 반복한다면 비록 백 날, 천 날이 되어도 움직일 가망이 없으니, 반드시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 더욱 힘을 써서 두 배, 세 배, 더 나아가 열 배에 이르도록 힘을 써 밀어야 비로소 효과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런가 하면 요즘 인기 있는 ‘필사’, 곧 베껴 쓰기를 바탕으로 학문을 이룬 이들도 있었다. 사실 필사는 ‘초서’라 하여 선비가 즐겨 쓰는 공부법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우리 역사를 자세히 정리한 《동사강목(東史綱目)》으로 유명한 안정복은 공부방에 ‘초서롱’과 ‘저서롱’, 두 바구니를 두고 초서롱에는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보며 필사한 자료를, 저서롱에는 책을 읽다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한 종이를 담아 두었다.

 

타고나기를 자유로운 성품이었던 연암 박지원은 틀에 박힌 문체가 아닌 자신만의 진솔하고 창의력 있는 문체로 《열하일기》를 비롯한 각종 여행기와 소설을 썼다. 박지원은 글 쓰는 사람의 어려움으로 네 가지를 꼽았는데, 오늘날 글을 쓰는 이들도 크게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p.94-95)

글 쓰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 근본이 되는 학문을 갖추기 어렵고, 둘째 공정하고 밝은 안목을 갖추는 게 어려우며, 셋째 자료를 총괄하는 역량을 갖추기가 어렵고, 넷째 분명하고 명쾌한 판단력을 갖추는 게 어렵다. …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평범하고 데면데면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어디다 쓰겠는가?

 

그 밖에도 책을 읽으며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완벽하게 알아내는 공부를 했던 정약용, 분류와 정리를 토대로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펴낸 이규경, 말하면서 배우고 다지는 학습법을 행했던 도산 안창호, 한눈에 열 줄을 읽는다는 ‘일목십행(一目十行)’ 속독법을 실천했던 신채호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마다의 공부법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 이들은 진정 공부를 사랑하고, 세상과 사물의 이치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부법은 다양할지라도, 공부를 지속하는 동력은 결국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자기발전 의지가 아닐까.

 

이들의 공부법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실천할 것을 권하는 지은이의 당부대로,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은 무엇일지 생각하며 읽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나온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많은 깨달음을 준다. 책의 주제가 워낙 흥미로워 각 공부법을 더욱 자세히 담은 성인용 도서가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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