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삶이 투영된 조선시대 실내장식

2022.07.06 11:23:31

한국국학진흥원, ‘양반가의 인테리어’를 주제로 웹진 담(談) 7월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 1일 “양반가 인테리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7월호를 펴냈다. 주거는 개인의 공간이자, 삶의 한 부분이다.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개성, 한 시대의 유행도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 선비들도 공간 조성을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집의 위치는 풍수를 고려했고, 사랑방에서 학문을 연마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며 교유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 선비 문화를 형성했다.

 

이번 호에서는 역사 속 이야기에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실내 장식(인테리어)를 살피면서, 그들이 생각한 주거의 목적과 공간에 깃든 철학을 알아보고 나아가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새롭게 그려보고자 한다.

 

작고 낮고 간결하게 나뭇결이 살아있는 가구로 자연스러움을 추구

 

김정호 교수의 [조선 시대 목가구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비례미]는 조선 시대 안방과 사랑방에 놓인 목가구를 중심으로 한옥의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비례미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조선 시대 민가의 주거공간은 안방, 사랑방, 부엌으로 나뉘고 그 각각의 공간에서 사용되는 가구는 해당 공간에 맞는 여러 형태로 그 모습이 나타난다. 가구 대부분이 화려한 장식이나 조각 등은 배제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의 특성이 반영된 나뭇결을 살려 제작되었다. 유럽이나 중국의 가구는 입식 생활과 실내공간이 넓고 높아 가구도 크고 육중하며 장식적인 면을 띄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차분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기질과 온돌로 인한 좌식생활의 영향으로 천정이 낮고 비교적 실내도 좁다. 그래서 가구들은 생활공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확보하기 위해 키가 작고 간결하게 제작되었다. 그리고 방의 가운데에 놓이는 가구들, 예를 들어 서안, 연상, 문갑, 반닫이, 소반 등도 효율적인 공간 활용성을 위해 이동성을 고려하여 제작되었다. 모두 키가 작고 세로 폭이 좁은 것은 평좌 자세에서의 실용성을 고려한 결과이다.

 

목재는 계절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해서 함수율(수분이 들어 있는 비율)이 높거나 폭이 넓은 판재는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등, 변형이 심하므로 전면의 넓은 면은 좁게 나눠 변형을 줄였고, 좁은 면이기에 아름다운 무늿결의 나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가구 전체에서 받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도 겸하였다.

 

안방에서 사용되던 문갑은 재료와 장식이 화려하고, 사랑방에서 사용하던 가구는 검소하고 소박하게 제작되었다. 소반의 경우 당시 남녀유별ㆍ장유유서의 유교 사상으로 겸상보다는 독상이 주로 쓰였다. 조선 시대의 윤리관은 주택의 공간도 남녀유별의 관념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었고, 가구들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역사 왜곡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 이유와 타당성이 있는 허구

 

[역사콘텐츠 제작의 뒷이야기 가운데. 담(談)사모(웹진 <담(談)>를 사랑하는 사람들) 좌담회]에서는 강선주(드라마 작가), 정용연(만화 작가), 조경란(역사 자문/ 편집위원장), 조정미(콘텐츠 연구가ㆍ작가), 하원준(영화감독) 및 한국국학진흥원의 콘텐츠정보팀 웹진 <담(談)>의 담당자 3인이 참여하여 역사콘텐츠 제작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그들의 기억과 시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편에서는 스토리테마파크와 깊이 관계된 세 명의 작가(강선주, 하원준, 정용연)가 생각하는 전통 기록을 활용하는 방법과 각자의 비법을 공유한다. 각 작가가 염두에 둔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배우, 왜 역사 콘텐츠가 유행 중인지에 관한 질의응답이 오고 갔다.

 

창작자로서 역사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은 하원준 감독의 경우 기록된 역사를 살펴보고, 기록에서 극적인 사건이 무엇인지 정하는데, 기록이 없거나 빈약하면 기록에 반하지 않는 조건 아래 극적인 사건을 허구로 만들어낸다. 강선주 작가의 경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자신이 다루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부분과 아닌 부분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진실과 다르게 창작된 부분에 대한 이유와 타당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전한다. 그 외 웹진 담(談)에 실었던 콘텐츠에서 의도한 바와 정용연 작가가 웹툰 작업 중 고증이 필요한 경우 참고하는 자료들도 공개한다. 마지막 간담회 이야기는 다음 호에도 찾아온다.

 

 

우물 가까운 물세권이 최고

 

서은경 작가의 [스토리 웹툰 – 우물, 굴뚝, 땔감]에서는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의 《쇄미록(瑣尾錄)》 속 이야기 가운데 전란을 피해 변두리로 이사한 오희문 일가의 새집 적응기를 통해 ‘좋은 집’의 조건인 ‘O세권’으로 소개한다. 오늘날 숲세권, 역세권에 따라 집세가 결정됐다면 조선시대는 물세권, 곧 우물이 가까운 곳이었다. 수도가 없던 시대에 하루 세끼 밥하고 빨래하려면 우물이 가까운 곳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을 구하기도 어렵고, 굴뚝도 잘못 설치되어 방 안에 연기가 자욱하고,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집에서 고군분투하는 오희문 가족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흥미롭게 전한다.

 

 

 

등장만으로 설명이 필요 없는 무대 속 전통 실내장식

 

이번 호부터 연재하는 뮤지컬 작가 이수진의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무대 위에 집을 짓다]에서는 마당놀이 <놀부전>의 ‘화초장’, <발레 춘향>의 ‘책가도’ 등 전통 주거공간 안에 놓인 소품이 무대 위의 작품으로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다양한 무대 장르에서 전통 소재를 다룰 때 대부분 고전 속 인물을 차용하고 그 인물이 입은 옷으로 시대가 구현된다. 실내장식의 경우 생략되기 마련이지만 몇몇 작품에서 등장한 사례를 살펴본다.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놀부전>에서는 화초장이 등장한다. 화초장은 문판(반닫이의 앞면 위쪽을 젖혀 열게 된 문짝의 널)에 꽃 그림을 그려 장식했으며, 장 안에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고 한지나 비단을 발라 둔 옷장이나 의걸이장(위는 옷을 걸게 되고 아래는 반닫이로 된 장)인데 조선 사대부의 안방에는 꼭 이 화초장이 있었다. 쇠뿔을 이용한 화각공예로 새긴 꽃 그림 장식이 있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정조가 책을 강조하기 위해 책 그림을 어좌 뒤에 병풍으로 펼쳐놓았었다. 이 때문에 양반들도 책가도 열풍에 동참하여 거의 이백 년 동안 유행하였다. 19세기 화가 이형록이 책가도에서 이름을 떨쳤는데 이것이 유니버셜 발레단의 <발레 춘향>의 무대 배경막에도 반영되었다. 양반가의 서재를 표현하기 위해 잠시 등장하나 공간에 대한 말이 필요 없는 간결한 설명과 분위기를 형성했다.

 

국립극단의 백성희ㆍ장민호 극장의 개관작인 <3월의 눈>은 관광지가 된 오래된 한옥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장오와 그의 아내 이순의 이야기이다. 한옥을 오롯이 무대 위에 지었고 마루 아래, 댓돌 뒤 등 틈새마다 오랜 세월을 지내 온 소품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현실감을 더했다. 그 한옥에는 장오와 이순의 평생의 삶이 새겨진 집이자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으니, 집 자체가 이 작품의 숨겨진 주인공이다.

 

전쟁 통에 만난 장오와 이순은 평생을 살았던 집을 팔아버리고 요양원에 들어갈 참이다. 날이 밝으면 떠날 집이지만 그 하루 사이에 장오의 집에는 관광객부터 노숙자까지 찾아드는데, 장오는 내일이면 해체될 집의 문짝에 창호지를 새로 바른다. 깔끔한 성격의 아내 이순이 낡아버린 문의 창호를 남 앞에 보이기 싫어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배우들은 실제로 입에 물을 머금고 뿌려서 종이를 불려 뜯어내고 풀을 발라 새 창호를 바르며 오손도손 과거를 떠올리는데, 두 사람의 기억이 저마다의 인상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게 또 극의 묘미를 준다.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풍수일기]에서 오진사네 아들이 새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축자재를 폐가에서 가져다 쓰자, 그 폐가와 얽힌 정생의 기억을 소환하고, 주춧돌에 욕심을 부렸다가 화를 입는 정생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오진사댁 아들이 출사도 하고 아이들도 커서 독립하기 위해 유명 풍수가도 불러 집터를 확보하고, 집을 지으려는데 필요한 목재 등을 갑자기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오진사가 사둔 폐가의 자재를 쓰기로 했다. 접장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은 정생은 그 집에 얽힌 별의별 귀신 이야기를 쏟아낸다. 무섭다고 부들거리던 접장이 그래도 이미 다 해체해버렸다고 하자 정생은 그러면 나무 기둥감을 다 가져갔냐고 묻는다. 언덕 위로 아무것도 안 남아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하던 필사를 급히 접고 접장을 내보낸 뒤 집을 나선다.

 

정생은 컴컴한 빈 집터에서 연꽃잎 조각이 새겨진 주춧돌을 무릎걸음으로 찾다가 구덩이에 굴러떨어졌다. 발을 크게 접질린 정생이 겨우 일어서 발을 딛자 팍삭 소리가 났다. 혹시 보물인가 싶어 둥근 형태의 물건을 집어 들자마자 번쩍 벼락이 쳐서 보인 그것은 해골이었다. 기절해버린 정생은 다음 날 아침 집터가 궁금해서 찾아온 접장에게 발견되었다.

 

깨어난 정생은 기둥 아래 아이를 묻었다는 소리를 지르며 완전 혼이 나간 상태였다. 하필이면 고려 때 무신정권의 최충헌이 짓던 별당에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잡아 색동저고리를 입혀 네 모퉁이에 묻어 액운을 방지했다는 소문을 담은 《최충헌 열전》을 필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생이 집어 들었던 해골은 빈 집터에 굴을 파고 살았던 여우였다.

 

[이달의 편액-공간을 기록하다, 초간정(草澗亭)]에서는 보물 제879호인 《초간일기》를 쓴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공주 목사에서 파직 후 고향 경북 예천에 지은 초간정사(草澗精舍)를 짓는 동안 남긴 초간일기 속 내용을 살펴보며 그 편액을 소개한다.

 

밀실과 광장이 공존하는 1582년에 권문해가 지은 이 정자는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26년에 그의 아들인 죽소(竹所) 권별(權鼈, 1589~1671)이 다시 건립하였는데, 이 역시 불타고 말았다. 현재 남아있는 초간정은 1739년에 현손인 권봉의(權鳳儀)가 옛터에 집을 짓고는 바위 위에도 정자 3칸을 세운 것이다. 옛 초간정의 풍경을 읊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이 지은 「초간정술회(草澗亭述懷)」 시가 편액으로 초간정 마루 위에 남아있다.

 

이번 호 편집장을 맡은 김민옥 교수는 “분매(盆梅)에 물을 주라.”는 퇴계 이황의 유언으로 편집자의 말을 시작했다. “12월에 피는 매화를 가장 사랑했던 퇴계 선생의 방 어딘가에는 화분에 담긴 매화가 자리했었을 것”이라며 “매화 화분이 다른 선비의 방과 다른, 퇴계 선생의 취향과 개성을 보여주는 ‘실내장식’”인 것처럼 “조선시대 선비의 주거공간에 담긴 이야기로 7월 시작과 함께 담담하게 101호를 전한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기록 자료를 문화예술 기획·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 일기류 250권을 기반으로 한 6,71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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