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화, “조국은 무엇입니까?”를 외치다

2023.01.04 11:33:03

뮤지컬 ‘영웅’ 한국만의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4]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정성화 배우가 안중근 역으로 출연한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이 지난 12월 21일 첫선을 보였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원작 뮤지컬 ‘영웅’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상영 중이다.

 

초등학교 5학년 진급을 앞둔 딸이 텔레비전 광고를 보더니, 뮤지컬 영화 ‘영웅’를 보러 가자고 하였다. 4학년 때부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찾아보며 스스로 역사 공부를 하는 딸은 12월 16일 유관순 열사의 생일과 12월 22일 주시경 선생의 생일을 챙기는 열정을 보이며 독립운동가들의 행보를 찾아보고 있다. 그런 딸이 처음으로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한 영화가 안중근 의사에 관한 이야기니 나도 호기심이 생겨 예매를 서둘렀다.

 

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웃고 울고를 반복하였다. 오른쪽 가운데 있는 손가락의 살들이 잔뜩 뜯겨 있길래 물어보니 눈물을 삼키느라 그랬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 책으로 보고 알고 있었지만, 그 거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있었을 어려움과 고뇌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지들을 잃고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어도 안중근 의사의 “조국에 대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절절하게 느꼈다고 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이야기에 뮤지컬 ‘영웅’을 초연부터 몇 번을 보았기 때문에 큰 감동을 기대하지 않고 딸을 따라 길을 나섰다. 뮤지컬 원작과 몇 가지의 차이점을 두고 각색된 영화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주제만큼은 더욱 뚜렷하게 표현하고자 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쳤던 안중근 의사는 11명의 동지와 손가락을 끊고 자신들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며 피의 맹세인 ‘단지동맹’ 노래를 부르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뮤지컬 원작의 ‘왕웨이와 링링’ 중국인 남매는 독립운동을 함께 한 동지인 ‘마두식과 마진주’의 한국인 남매로 인물설정을 변경하였다. 14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유부남 안중근을 좋아하는 링링의 캐릭터에서 비슷한 연배의 유동하와 풋풋한 사랑을 선보이는 마진주로 바꾸면서 대한의 청년들에게 평범한 사랑마저 허락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이 된 것 같아, 뮤지컬 원작과는 다른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또한, 안중근의 아내와 자녀들, 독립운동을 이어 간 두 동생 안정근과 안공근도 잠시 출연한다. 영화에서 그들의 출연으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가족으로서 인간적인 고뇌와 두려움들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편지를 쓰고 수의를 만들면서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에서 실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오기도 하였다.

 

 

조마리아 역을 맡은 나문희 배우는 길지 않은 몇 장면에서 수의를 만들며, 오열을 참아내며 부르는 읊조리는 듯한 노래와 연기의 열연은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강력한 감동을 주었다.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비굴치 말고

당당히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가운데 줄임)

아들아

옥중의 아들아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중근아.”

 

이는 이윤옥 시인의 시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심정이 되어> 일부분으로 사형수 안중근 의사를 자식으로 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어머니는 간절히 왜놈 순사들을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하셨고 그런 강하고 선한 영향력이 안중근을 통해 일본인 교도관 지바 도시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 같다.

 

2009년 10월 26일 LG아트센터에서 안중근 의사 의거 100돌을 기려 뮤지컬로 초연된 ‘영웅’의 주인공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안중근 의사로 출연했다. 14년 동안 안중근의 역할을 해오면서 누구보다 인물에 대한 고민과 감정에 관한 많은 연구를 했을 이번 정성화의 안중근은 뮤지컬의 공연에서 준 감동처럼 영화에서도 검증된 그의 노래와 연기로 장면마다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다.

 

다만, 영화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어색한 장면 전환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뮤지컬의 막이 전환의 기법을 활용한 것은 기존의 영화 전환과 달리 공연무대의 조명을 활용해 분위를 바꾸는 등의 신선함을 주는 듯하였으나, 장면 전환 뒤 대사와 노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세심한 연출로 뮤지컬 영화로서 차별된 매력을 선보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조국은 무엇입니까?, 조국이 대체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안중근 의사가 부르짖는 외침, 몇 장면 뒤에 일본인 교도관 지바 도시치에게 자신은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으나 아이들은 기도하는 손으로 살게 하는 것이 평화라고 이야기를 남기며, 그가 바라는 조국의 모습을 담아낸다. 실존 인물인 지바 도시치는 처음에 안중근 의사에게 적개심을 표출하였으나 뒤에 인품에 감화되어 평생 존경하고 그의 유물을 소장하다가 반환한 인물이다.

 

지금,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조국은 무엇일까?

 

천주교 신자로 생명이 고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안중근 의사가 살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조국, 당시 조선은 지옥이었다.

 

“누가 죄인인가?” 원하지 않았던 통치와 조약들, 보호라는 거짓으로 제국주의에 빠진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속이고 세계를 속이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의 평화를 짓밟았다. 그 속에서 조선인들은 강제로 혹은 스스로 조국을 배신하기도 하면서 누가 진정한 범죄자인지 혼미해질 정도다. 그렇게 나라를 잃은 35년, 이제는 남북이 갈라져 72년을 대치하고 있다.

 

내 자녀들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자로 커나가기보다는 그 두 손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손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한 안중근 의사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독립운동으로 만들어 낸 우리의 조국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물처럼 버려,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 동양평화론 <서문> 중 -

 

뮤지컬 원작에서 선보였던 주옥같은 노래들이 영화의 빠른 장면 전환과 공연무대를 연상케 하는 생동감 있는 연출들을 통해 입체감을 느끼며 성찰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을 중심으로 구성된 장르다. 영화가 유성화함에 따라 음악이 중요한 표현한 수단이 되면서 1927년 유성영화의 기술적 완성과 함께 영화를 위한 뮤지컬이 가능해졌다. 1930년대 말부터 MGM은 뮤지컬 영화에 주력하면서 ‘오즈의 마법사’ 등의 작품들이 선보였고 1940년대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여로 유머와 애국심을 갖게 하는 뮤지컬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첫 뮤지컬 영화 '아리 러브 마마'가 신상옥 감독에 의해 처음 선보였다. 이후 2000년대 들어와 '구미호 가족', '삼거리 극장'이 제작되었으나 흥행을 거두진 못하였다. 음악을 매개로한 작업들이 '세시봉', '파파로티', '써니'로 음악영화의 명맥은 이어갔으나 완전한 뮤지컬 영화의 제작은 여전히 손에 꼽히는 수준이었다. 

 

개봉 전 예매 관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뮤지컬 영화 ‘영웅’은 아바타: 물의 길에 밀리며 2위로 밀려났으나 8일 차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꾸준한 관객몰이를 하였고 드디어 1월 1일 일요일 기준 좌석 판매율 역시 38.4%를 기록하며 ‘아바타: 물의 길’(37.7%)보다 다소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길지 않은 뮤지컬 영화의 역사에서 장면 전환 뒤 대사와 노래 처리 등의 아쉬움을 남기긴 하였으나, 누구나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뮤지컬 영화로 도전한 것에 크게 손뼉을 쳐주고 싶다.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들은 세계의 관심 속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이야기와 주제, 인물의 다양한 개발로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특히, 영화 산업분야의 성장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의 역사를 기반으로 이미 흥행의 성적을 입증한 한 뮤지컬을 원작을 뮤지컬 영화로 제작한 것에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흥행성적도 기대 해 볼 만 한다. 영화 '영웅'이 한국만의 뮤지컬 영화의 장르를 구축하는 한 획이 되길 바란다.

 

 

이진경 문화평론가 jksoftmil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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