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뼈ㆍ플라스틱괴 늘어나는 지금 ‘인류세’

2023.03.02 12:04:43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8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주에 지구가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이다. 과학자들이 화석을 연구한 결과 지구에 생명체가 태어난 것은 약 30억 년 전이라고 밝혀졌다. 화석에 나타나는 다양한 생명체의 흔적을 연구하여 지질학적 연대기를 구성한 것이 지질 시대이다. 지질 시대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 대(代)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지질 시대를 시생대ㆍ원생대ㆍ고생대ㆍ중생대 ㆍ신생대로 나눈다. 대는 다시 몇 개의 기(期)로 나누어지고 기는 몇 개의 세(世)로 구분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이 활보했던 중생대(2억 5,100만 년 전 ~ 6,500만 년 전) 말에 지구는 커다란 운석과 충돌하여 생물의 대멸종이 일어났다. 이때 대멸종은 지구 역사상 5번째로서 지구에 사는 생물종의 75%가 사라졌다. 중생대가 끝나고 6,5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신생대라고 한다. 신생대는 포유류와 꽃 피는 식물(속씨식물)이 특징인 시대다.

 

영국의 지질학자 라이엘은 1833년에 지질 시대를 지층의 특성에 따라 제1기 ~ 제4기로 나누었다. 그 후 1872년 학계에서는 동물 화석에 따라 지질 시대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재분류하였다. 이때 제1기는 고생대가 되고, 제2기는 중생대가 되었다. 제3기와 제4기는 신생대가 되었다.

 

신생대 제4기는 홍적세(洪積世)와 충적세(沖積世)로 구분된다. 홍적세는 250만 년 전에 시작되는데, 속칭 빙하기라고도 부른다. 이 시기에 4번의 빙하기가 있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쇠퇴하면서 지금으로부터 1만 2000년 전에 충적세가 시작되었다. 충적세는 토양이 형성되는 시대로서 현세(現世) 또는 홀로세(Holocene Epoch)라고도 부른다. 충적세에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다.

 

홀로세가 시작될 무렵 지구에 살던 인류는 50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인류는 채집ㆍ수렵의 방랑 생활을 끝내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다. 농경시대가 시작되자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마을과 도시가 형성된다. 도시 인구가 늘어나자 부족장이나 임금 같은 권력자가 나타나게 된다.

 

일부 학자들은 홀로세 가운데서도 인간의 영향이 뚜렷한 18세기 산업 혁명 이후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부르자고 주장하였다. 인류세란 미국의 생물학자 스토머와 네덜란드 화학자 크뤼천이 2000년에 제안한 새로운 용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환경이 엄청나게 변화하였고, 이를 지질시대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뒤 과학계에서 인류세라는 표현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인문학계에서도 현시대의 환경문제를 상징하는 중요한 용어로서 인류세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인류세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인류세의 기상학적 특징은 지구온난화 현상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 ppm(농도 단위로서 1ppm은 100만분의 1)이었는데, 2020년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는 413 ppm으로 크게 늘었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하여 북극의 얼음이 녹고, 세계 곳곳에서 가뭄과 홍수 그리고 태풍이 발생하는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자 UN의 주도로 대부분 국가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0으로 만들기 위한 ‘탄소 제로’ 목표를 선언하였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1도 상승했는데, 기온이 6도 상승하면 생물의 대멸종이 나타날 것으로 염려된다.

 

인류세의 생물학적 특징은 야생의 생물종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농경지와 주거지 그리고 공업단지를 만들기 위하여 지구 곳곳에서 숲을 베어내고 바다를 메우고 있다. 숲이 사라지면서 숲에 살던 수많은 야생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유엔의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2019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 활동으로 인해 생물종이 사라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라며 “수십 년 안에 지구상 생물 개체수의 1/8인 100만 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라고 경고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 역사상 제6차 생물 대멸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류세의 지질학적 특성은 닭뼈 화석과 플라스틱 화석이다. 지질 시대는 화석에 포함된 동물이나 식물의 흔적을 연구하여 구분하는데, 먼 훗날 인류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지층에서 수많은 닭뼈 화석과 플라스틱 화석을 발견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닭은 1년에 약 600억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 인구수는 2011년에 70억 명이었는데 빠르게 늘어 2022년에는 80억 명이 되었다. 인류는 1인당 매년 닭을 7.5마리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인이 즐겨 먹는 치킨은 닭의 생물학적 특성이 많이 달라진 신종이다. 《죽음의 밥상》이라는 책에 따르면 식용으로 기르는 닭은 야생 닭보다 먹이는 1/3밖에 먹지 않지만, 성장 속도는 3배나 빠르다.

 

야생 닭의 수명은 10~20년이나 된다. 그러나 공장식 사육장에서 성장촉진제를 섞은 사료를 먹여 빠르게 키운 닭은 태어난 지 5~6주 사이에 도축되어 상품이 된다. 치킨이 되는 닭은 평균수명까지 살지 못하고 모두 어린 나이에 비명횡사한다. 중생대를 대표하는 화석이 공룡화석이라면, 먼 훗날 인류세를 대표하는 지표 화석은 닭뼈화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인간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플라스틱은 자연에 없는 새로운 화학물질이다. 1950년에 플라스틱 생산량은 불과 200만 톤이었는데, 2019년에는 4억 6,000만 톤으로 급증하였다. ‘플라스틱 암석’은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를 말한다. 지질학자들은 플라스틱이 암석에 달라붙거나 돌, 모래, 조개껍데기, 산호 등과 엉켜 매우 단단한 덩어리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과학자들은 미국 하와이 남동 해변에서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들을 발견하였는데, 새로운 유형의 암석이라는 뜻에서 ‘플라스틱괴(plastiglomerate)’라는 이름을 붙였다. 플라스틱이 바다의 밑바닥이나 퇴적물에 쌓이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플라스틱 화석이 만들어질 것이다.

 

 

인류세를 지질 시대의 공식 용어로 사용하자는 과학자들이 있지만 2020년 기준으로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인류세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는 300년이 채 안 되며 지질학적 기준으로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인류세라는 단어는 과학계를 넘어 인문, 예술, 사회, 정치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용어가 되었다. 인간이 압도적으로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는 현재의 시대를 인류세라는 단어가 잘 설명하고 있다.

 

인류라는 특이한 생물종이 생태계의 다른 식물종과 동물종은 물론 지구 환경 전체에 충격을 주는 시대가 인류세이다. 인류세가 계속되면서 지구의 기온은 점점 더 오르고, 멸종되는 동식물은 더욱 늘어나고, 지층에 닭뼈와 플라스틱괴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인류가 이러한 환경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지구는 인류가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할지도 모른다.

 

호주의 저명한 생물학자 페너 교수는 2010년에 “인구 폭발과 억제되지 않은 소비로 인류는 생존할 수 없으며 아마도 1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피엔스》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이스라엘의 히브리대 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는 2016년에 이렇게 말했다. “2100년이 되면 현생 인류는 사라지고 기계와 인간의 결합체가 나타날 것이다. 알파고가 그 신호탄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은 2017년에 “소행성 충돌과 인구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다.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인간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서 살 수가 있을까? 《코스모스》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만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옮겨 살 수 있는 곳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도전한 기업인이 있다. 테슬라 전기 자동차로 유명한 미국의 일론 머스크는 2002년에 ‘스페이스X’라는 우주개발 회사를 만들었다. 머스크는 화성을 식민지화하여 2050년까지 인구 100만 명을 화성으로 이주시킨다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인류세에 사는 독자 여러분은 어느 주장을 따르겠는가?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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