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자, 스님 만나려 온갖 궤변을 떨다

2023.04.27 11:48:15

금산정사 방문기 - 2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표를 예매한 우리는 작은 손가방 하나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열차에 탔다. 사실 이렇게 두 남자가 금산정사 방문 여행을 실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두 남자야 의기가 투합했지만, 문제는 사모님의 내부 결재. 연담 거사는 불교 신자로서 법사 자격증까지 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나는 당시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십일조까지 내는 기독교 신자였다. 나는 화성군 봉담면에 살지만,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교회에 나간다.

 

 

그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3일이나 집을 떠나 전라남도 섬에 있는 스님을 만나러 간다? 아무래도 명분이 없었다. 마침 대학교는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지방 학회에 출장 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명분을 찾았으나 마땅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궁리 끝에 결국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 며칠 동안 유별나게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다. 독자 중에는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꼭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안 하던 방청소도 깨끗이 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놈 숙제하는 것도 보아주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서 아내가 기분 좋을 때를 골라서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여보, 저기 말이야. 나하고 해마다 연하장을 주고받는 현정 스님 있지? 몇 년 전부터 전라남도의 거금도라는 섬에 계시거든. 그런데 자꾸 한번 놀러 오라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 참 여유 있네요.” 아내는 약간은 비웃는 듯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돈의 여유는 없어도 마음의 여유는 항상 있지. 국토개발원 국불회장하고 이야기는 되었는데, 기차표를 사기 전에 아무래도 당신의 동의를 받아야 남편의 도리인 것 같아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반대한다고 당신이 안 가겠어요?” 아내는 내 수작을 뻔히 알겠다는 듯이 말하였다.

 

"당신의 뜻이라면 대개는 따르잖아. 화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요. 요즘 주부들 사이에 ‘남편 기 살리기 운동’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야. 사실 요즘 40대 남자들 불쌍하잖아. 열심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20여 년 동안 죽어라고 일했는데, 경기가 좀 나빠지니 명퇴(명예퇴직 당하는 것)다 황퇴(황당하게 퇴직당하는 것)다 해서 가을에 나뭇잎 떨어지듯 쫓겨나지.

 

요즘 서울 근교 산에는 주중에 등산하는 40대 남자들이 그렇게 많대. 그 사람들이 전부 직장을 잃고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집에 있자니 어색하고, 마지못해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래. 쫓겨나지 않고 붙어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욱 긴장되어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그러다가 쓰러지면 그것을 ‘돌연사’라고 한 대.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우리나라가 세계 1위라고 하잖아.

 

요즘 남자들이 기가 죽어서 나타난 유행어가 있잖아. ‘고개 숙인 남자’라고. 당신 남편도 예전보다 기가 많이 죽었어. 아직은 기가 약간은 남아 있지만 남자가 고개를 숙이면 여자에게도 득 될 게 하나도 없잖아. 그래서 현명한 주부들 사이에 나타난 운동이 남편 기 살리기 운동이래.

 

신문에 났는데, 남편 기를 살리는 10계명이 있더라고. 농담이 아니야, 내가 어디 오려 두었는데, 나중에 찾으면 꼭 보여줄게. 지금도 몇 개는 생각나는데, 뭐더라? 맞다! ‘남편을 다른 남자와 비교하지 말자’ ‘매일 한 번씩 남편을 칭찬하자’ ‘남편에게 용돈을 많이 주자’ 등등. 남편의 기 살리는 방법 가운데서 우리의 대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 열 번째 계명인데, 뭐라고 했냐면, ‘때로는 남자가 혼자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줘라.’ 이렇게 되어 있을 거야."

 

“그래서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이 그렇다고 참고로 말했을 뿐이야. 당신이 결사반대하면 할 수 없지 뭐. 국불회장한테는 약속을 다 해 두었는데, 당신이 정 안 된다면 전화를 걸어서 못 간다고 말해야지. 기라는 것이 꼭 여행을 가야 살아나는 건 아니니까. 그것참 난처하네. 당신한테 먼저 말하고 국불회장 하고 약속할 걸 그랬군.”

 

“·······.”

 

내가 위와 비슷한 내용으로 온갖 궤변을 미안한 표정으로 그러나 진지하게 늘어놓자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나는 경험으로 안다. 내가 묻는 말에 아내가 말이 없으면 그것은 동의한다는 뜻임을. 처녀 때도 그랬다. 나는 캠퍼스 커플로서 연애 결혼을 했는데, 연애가 상당히 익어간 어느 날, 내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니 아내는 말이 없었고, 결국 결혼에 성공했던 것이다.

 

 

내가 어렵게 방문하는 금산정사가 있는 섬, 거금도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3,348개의 섬이 있다. 이 중에서 유인도는 472개이고 무인도는 2,876개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그래도 거금도는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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