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사명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2023.07.28 11:55:27

일제강점기의 강압적 교육에서 벗어나는 학교문화가 되어야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8]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 글에 앞서 서이초등학교 교사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교보재 준비실에서 지난 7월 18일 아침 10시 30분 안타까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무너진 교권 앞에서, 앞으로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황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교단에 서기까지 18개월 아이들부터 88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지난날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신입 강사 시절, 한 유명 사립유치원에서 단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유난히 말썽꾸러기였던 아이가 문밖에서 계속 수업을 안 들어오겠다며 장난을 쳤다. 그 아이만 신경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에 참여하였지만, 학부모 민원으로 이어져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원장님은 그런 곤란한 상황에서는 다른 교사들이나 원장님께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필자는 돌발상황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알게 되어 하나를 더 배웠다는 생각에 혼은 났지만, 마음과 발걸음이 가벼웠다. 또, 그 이후 아이는 스스로 수업에 잘 참여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인데, 수업을 강요하지 않고 계속 눈이 마주칠 때마다 들어오라고 보인 손짓과 들어왔을 때, 꼭 껴안아 준 것으로 이미 받을 사랑과 관심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였는지 더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마음을 다해 사랑해주신 선생님과 그렇지 않은 선생님 두 분류로 나뉜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에 따라 수다쟁이가 되기도 했고, 소심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맞벌이 부모님이셨던 필자의 어머니께서 학교에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으셨어도 간식을 보내는 어떤 어머니들의 아이들과 차별 없이 사랑해주셨다.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의 장점을 이야기해주셨고, 항상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물론, 우리 반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 때면 호되게 훈육도 하셨다. 손들고 벌도 섰고 손바닥을 맞기도 하였다.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갈라 유치한 싸움을 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서로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선생님의 훈육은 스스로 알고 깨닫게 해주는 가르침이었고, 그 가르침은 우리를 성장시켰다.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남자분이셨다. 그분은 가끔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셨다. 당시 필자의 집에서 학교는 걸어서 5분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단지 내 있었다. 아침 등굣길에 속이 좋지 않아 의자에 앉아 먹은 것을 한참 게우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던 필자가 어떻게 지각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기는커녕 다짜고짜 엎드려 뻗치라고 하셨고 매를 맞았다.

 

집에 와서 속상했고, 몸도 계속 아팠던 필자는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담임선생님께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석한다고 전하였다. 그 전화의 끝에 맞벌이 부모이고 하니 잘 돌보아 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하셨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다음 날 나에게 건방지다며 나무라셨다. 무엇이 건방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부모님께서 전화한 것 자체가 싫으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누군가가 잘못하면 무조건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서 단체 벌을 섰던 것이 기억이 있다. 왜 혼났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중학교 2학년 시절이 끔찍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

 

교실 내의 신체적 폭력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김홍도의 서당에는 매를 맞고 우는 아이가 서 있다. 그 아이를 보는 훈장님의 표정은 화가 난 모습이 아니라 슬프고 안타깝고 민망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다른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고 있다. 만약, 선생님의 매질이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여 나온 순간적인 분노 표출의 행위였다며, 아이들은 웃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공포로 떨었을 것이다. 필자와 중학교 2학년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매를 맞은 아이를 바라보는 훈장님의 표정에서 어떤 심정으로 회초리를 들으셨는지 가늠할 수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교실 내의 훈육과 폭력이 분간 없어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에서 더는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고 일본 이름으로 불렸다. 칼을 찬 군인의 모습을 한 교사가 엄격한 수업을 진행하였다. 복종하지 않을 땐 가차 없는 폭력이 있었다. 이들에게 식민지인으로서 억지로 정신 개종을 위한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민족의 정신과 얼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창의적인 생각을 제한하고 칼이라는 도구를 통해 위협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광복이 되었어도 그 잔재가 남아 교실에서 훈육의 이름으로 폭력이 이어졌다. 이것을 참다못한 부모들은 다양한 시민 활동을 통해 자유로운 교실을 만들고자 했다. 교사들에 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훈장님의 마음이 아니라고 느끼고 도가 넘는 훈육의 이름으로 폭력이 행해지는 것에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본 취지를 넘어 교권이 무너지고 이해할 수 없는 참담한 일이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딸아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담당교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봉사자들 충원으로 반을 나누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고 12년 동안 학교나 교회에서나 문제없이 잘 지냈던 터라 올해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바뀐 선생님과 첫날, 딸아이가 이야기 나눔 시간에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끊고 “그건 네 생각이고”라며 면박을 주셨다고 한다. 첫날이고 인사 겸 전화를 드려 상황을 물어보니 딸아이의 말이 길어져서 그랬다고 하시길래, 신입교사인 줄 알고 1분씩 제한을 두면 어떻겠냐며 나름의 교단의 경력과 교회 주일학교 봉사자로서의 경험으로 도움이 되고자 제안드리니 25년 경력의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고 하신다.

 

동문서답이 느껴졌지만, 사랑으로 잘 보살펴달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4개월을 또 믿고 맡겼다. 그 이후로 전화한 적 없으며, 단톡방에 개인적인 일을 올리시는 것에도 같이 기도하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었다. 사실, 이제껏 캠프를 위해서 단톡방을 만들고 일정 공유를 하는 것 외에 교사 봉사자들과 학부모들이 사적인 것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만큼 서로 긴밀하게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난히 선생님께서 단톡방에 이것저것 올려대셨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이 인정욕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딸아이가 교회 미술대회에 출품할 작품을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나 보다.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여기가 학교냐며 왜 자신이 챙겨야 하냐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아이는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고 국밥을 시켜놓고 소리 없이 울기만 하였다.

 

작품 출품작을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선택사항이었고 아이가 꼭 내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닌 상황에서 설마 선생님께서 화를 냈을까 싶어 앞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선생님은 나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말라며 큰 소리를 내면서 연신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어안이 벙벙하여 필자는 입 벙끗하지 못하였다.

 

잘잘못을 말하려고 전화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목사님과 이야기하라고 하며 적개심을 표하며 소통을 피하기만 했다. 목사님과 소통해야 하는 문제인가 고민을 했지만, 여름 캠프를 앞두고 더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이시기에 원활한 해결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목사님과 상담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얼마 뒤, 캠프까지만이라도 아이들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시고 무책임하게도 그만두셨다.

 

그리고, 며칠 전 문자가 왔다. 그 선생님은 서이초 교사의 사건을 운운하며 입에 담을 수 없는 폭력적인 이야기들로 감정을 쏟아냈다. 첫날 본 아이의 행동만 보고 인성을 이야기하였고 잊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멋대로 떠들었다. 캠프까지만이라도 진행해달라는 부탁에도 소통을 끊고 너무 쉽게 아이들을 두고 그만두시고는 오히려 서이초 교사의 사건을 입에 올렸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 한 번만 “왜 그랬을까?” 생각하고 물어보았다며 감정이 상하는 일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전화를 건 엄마에게 적개심보단 소통의 기회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문자메시지로 이내 내 개인의 감정이 아프다기보단 참 안타깝고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길래 이렇게까지나 방어적이었을까 싶어 마음이 아렸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람의 마음은 가장 먼저,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훈육하였다.

 

지금의 학교 상황을 보면 교사, 학부모, 교육 관련 기관, 학교장들은 서로의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들은 성공적인 입시의 결과에 목메고 아이들의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에 소홀하였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학교의 문화는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갈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자립심을 가지도록 성장시키는 것을 목적해야만 한다. 또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사고하되, 옳고 그름의 정의를 알고, 진취적인 행동을 하는 도전과 용기를 갖춘 사회성을 갖도록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훈육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시작해야 하고 서로 믿고 협력해야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어내며 문제를 외면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서 교육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사들을 믿고 기다리고, 교사들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학부모와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교육 관련 기관들은 교사와 학부모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분위기와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학부모와 교사의 소통을 민원으로 처리하는 우매한 짓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학교장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만의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며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는 기준을 마련하여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아름다운 학교의 문화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진경 문화평론가 jksoftmil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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