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쨍 한번 합시다

2023.10.20 11:33:30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재담꾼인 박 과장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했다. 군대 가서 고생 안 했다는 사람 없고 모두 자신이 빳다도 제일 많이 맞고 기합도 제일 심하게 받았다고 우기며, 대개는 튀밥 튀기듯이 침소봉대하는 것이 군대 이야기이다. 이윽고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와 각각 옆에 앉았다. 김 과장은 여전히 박 과장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박 과장은 이제 병장이 되었고, 제대 말년에 졸병들을 종처럼 부리며 왕처럼 편하게 지낸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동안 김 과장은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아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 나에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그러고 나서도 박 과장이 제대하기까지는 10분 이상이 지나갔다. 그제야 김 과장은 아가씨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둑한 실내등에 비친 아가씨를 보니, 토끼처럼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귀여운 아가씨인데 이름이 뭡니까?”

“수련이에요.”

“나수련이라, 예쁜 이름인데요.”

“고맙습니다.”

“우리 이렇게 인연이 되어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같이합시다. 아가씨 잔을 가져오라고 해요.”

 

맑은 포도주를 반쯤 담은 유리잔이 쨍하며 마주친 후 김 과장이 물었다.

 

“그래, 우리가 오기 전에는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표를 띄고 있었어요.”

“화투? 그래 무슨 표가 떨어졌습니까?”

“공산과 솔과 오동이요.”

“무슨 뜻인가요?”

“달밤에 소식이 오더니 돈이 생긴다는 뜻이죠.”

“하하하, 아가씨를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네요.”

“왜 자꾸 존댓말을 쓰세요? 어색해요.”

“그래요? 습관이 돼서. 그렇다고 똑같은 인간끼리 반말은 그렇고 중간 정도로 하지요.”

 

앞자리에 앉은 박 과장과 미스 리는 진도가 빨랐다.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애인들처럼 다정스럽게 붙어 앉더니 손과 손, 가슴과 가슴, 그다음에는 입술과 입술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에 반해 이쪽은 좀처럼 진전이 없다.

 

“아가씨는 무슨 띠인가?”

“토끼띠에요.”

“그렇다면 자아축인묘, 스물여섯 살이군. 빨리 시집가야겠네.”

“가야지요.”

“시집갈 밑천으로 적금이라도 들었나?”

“사람이 있어야지요.”

“돈 벌어서 옷이나 사 입지 말고 적금이나 계라도 들어 둬야 시집갈 수 있지. 이런데 오래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해요.”

“내 말이 맞거든 쨍 한번 합시다.”

 

 

김 과장은 술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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