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슬픈 제주

  • 등록 2024.04.14 11: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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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시(Lisa See), 《해녀의 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잠시 국내에 들어와 있던 동생이 출국하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며 나에게 영문소설을 하나 주고 갔다. 리사 시(Lisa See)라는 미국 여류작가가 올 3월에 펴낸 《The Island of Sea Women》라는 소설이다. 동생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영어 원어로 된 소설을 읽어본다. 처음에는 의무감에 읽기 시작하였으나, 곧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소설은 영숙과 그녀의 친자매 같았던 친구 미자라는 해녀를 중심으로 1938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의 삶을 그린 것인데, 소설을 통하여 제주 해녀들의 삶과 애환, 슬픔 등이 피부에 와 닿도록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제주의 풍토, 민속 신앙, 역사 등 제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하여 나는 작가가 당연히 한국계 미국인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백인 여자다! 비록 증조부의 중국인 피가 조금 섞여 있긴 하지만, 외모는 완전 백인 여자다. 어떻게 백인 여자가 제주를 우리보다 더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리사는 어느 잡지에 실린 제주 해녀의 사진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언젠가 제주 해녀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때 아예 그 사진을 찢어내어 간직하면서 제주 해녀 소설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제주의 모든 것을 샅샅이 연구하기 시작했고, 제주까지 직접 와서 제주 해녀들의 삶을 관찰하고 해녀들의 생생한 증언도 들었다. 이리하여 그렇게 오랜 기간 리사 안에서 숙성된 제주 해녀들의 삶이 드디어 올 3월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소설에는 제주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두 사건이 들어가 있다. 소설 초반에는 영숙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던 제주 해녀 항일투쟁이 들어가 있고, 중반 이후에는 제주의 비극 4.3 사건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어용 해녀조합의 횡포에 분연히 들고 일어난 해녀 항쟁은 참여 해녀만 17,000여 명에 달하고, 집회 및 시위 횟수도 230여 회에 달하는 자랑스러운 제주 해녀의 역사이다. 다만 원래 해녀 항쟁은 1931년 12월 무렵부터 1932년 1월 무렵까지 일어난 항쟁이지만, 소설에서는 영숙의 나이에 맞게 설정하기 위해 1938년 항쟁으로 하였다.

 

아무래도 소설의 중심은 4.3 사건이다. 영숙은 4.3의 와중에 남편과 아들과 시누이를 잃었고, 자기 아들을 구해주지 않은 미자에 대한 분노에 평생을 갇혀 살면서 친자매 같았던 친구도 잃었다. 비록 소설 마지막에 미자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며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를 용서하였지만...

 

 

나는 대학교 때 처음으로 4.3 사건에 관해 쓴 글을 보면서, 내가 태어나기 불과 10년 전에 제주에서 그런 엄청난 비극이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소설로 섬세하게 묘사되는 4.3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다. 영숙은 자기 눈앞에서 남편의 머리가 총알에 두부처럼 터지는 것을 봐야 했고, 총알이 아깝다며 진압군이 아들의 발목을 잡고 벽에 계속 패대기를 쳐서 죽이는 것을 봐야 했으며, 진압군이 칼로 시누이의 가슴을 도려내며 죽이는 것을 봐야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또한 영숙의 바로 옆에 앉아 학살의 현장을 바라보는 듯이 몸서리쳐지고 분노와 슬픔의 눈물이 흐른다.

 

지금 제주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나라 밖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평화의 아름다운 섬이 되었다. 제주 곳곳에 아름다운 명승지와 관광지, 놀이시설, 골프장 등이 널려 있다.

 

그러나 제주에는 4.3을 잊지 못하는 4.3 평화공원,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고, 곳곳에 비극의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표석들이 숨어있다. 제주를 찾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과연 이런 4.3의 현장을 찾아 잠시나마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전에 택시를 타고 4.3 평화공원에 가자고 하니, 운전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생각이 난다. 그곳으로 가자는 승객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좀 더 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을까? ​

 

제주를 찾는 이들이여! 한 번쯤은 이런 4.3의 현장을 찾아봄이 어떠할지. 아니 찾을 여유는 없더라도 제주에 내리면 한 번쯤은 4.3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져봄은 어떠할지. 그보다 비행기가 ‘삐지직’ 하며 제주공항 활주로에 바퀴를 문지를 때, 그 활주로 밑에는 아직도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암흑 속에 묻혀 있는 4.3 희생자들이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떠올려 봄이 어떠할지...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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