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한 해묵은 다짐

  • 등록 2025.07.22 10: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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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해묵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아침부터 해가 뜨겁게 느껴집니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햇볕이 바로 내리 쬐니 말입니다. 한낮에는 그야말로 '불볕더위'와 함께 '무더위' 를 함께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시원한 마음으로 하루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해묵다'입니다. '해+묵다'의 짜임으로 된 말로 바탕 뜻(기본의미)은 '어떤 몬(물건)이 해를 넘겨 오랫동안 남아 있다'입니다. 저는 지난 이레끝(주말) 집가심(집청소)을 했었는데 구석에서 뜻밖의 것을 보았습니다. 해묵은 고구마에서 줄기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키운 것처럼 자란 것을 보고 놀랐지만 먹지 못할 만큼은 아니라서 줄기를 떼고 삶아 먹었답니다.

 

이처럼 해를 넘겨 남아 있는 것들을 나타낼 때도 쓸 수 있지만 '어떤 일이나 감정이 해결되거나 풀어지지 못한 상태로 여러 해를 넘기거나 많은 시간이 지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묵은 과제", "해묵은 고민"과 같은 말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박경리 님의 '토지'에 '해묵다'를 쓴 좋은 보기가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해묵은 원한은 쉽사리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원한'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해묵은 원한'이라고 함으로써 여러 해를 걸쳐 풀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단단히 굳어버린 마음의 응어리를 더 생생하게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해묵다'는 우리의 나날살이 곳곳에서 씀으로써 말맛과 글맛을 새롭게 해 줄 수 있는 말입니다. 저처럼 짐을 갈무리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해묵은 여러 가지 것들과 함께 여러 해 동안 풀지 못한 많은 것들을 떠올려 보시면 나눌 이야기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들 앞에서 쉬운 토박이말로 된 배움책을 만들고 온 나라 사람들이 토박이말을 다함께 알고 쓰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해묵은 다짐 때문에 이렇게 터울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 둘레 해묵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해묵다'라는 말을 붙여 이야기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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