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에도 교도소는 있으나, 죄인은 없다

  • 등록 2025.07.31 12: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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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날마다 더 끔찍한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가?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5]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며칠 전, 김포의 한 단독주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남성이 60~70대의 부모와 형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침 뉴스를 접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또 친 아버지가 조립한 공기총으로 자식이 있는 아들을 살해했다는 보도가 꼬리를 잇고 있다. 이런 비극은 멀리 떨어진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날마다 방송되는 끔찍한 사건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강력 범죄, 존속살해, 성폭력, 청소년 범죄, 보이스피싱… 사건마다 무시무시하고 치가 떨린다. 범죄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치밀하고, 지능화 되어가고 있고, 잔혹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회는 이에 대한 긴장감을 점점 놓아버리는 듯하다. 제도는 완화되고, 감시망은 느슨하다. 죄는 진화하는데, 방어선은 퇴화하고 있는 듯하다. 강력 범죄자들을 처벌하는데도 얼굴을 가리는 등 신상 공개를 주저하고 죄의 대가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범죄는 문화 수준과 비례한 것 같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범죄가 더 무자비해지고 지능화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사건들을 목도 하노라면 내가 잠시 체험하고 온 부탄 사회가 떠오른다.“부탄에는 교도소는 있으나, 죄인이 없다.”

 

이 말은 부탄을 취재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부탄 영사관을 방문했을 때 영사관 관장의 입에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어느 정도 부탄의 실상을 알고 있었지만, 이 짧은 이야기는 나의 가슴을 깊이 흔들었다. 도대체 어떤 사회이기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더 알고 싶었다. 그 땅을 직접 밟고 체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렁였다. 다행히, 내 뜻을 알아준 자선가 ㄱ 씨와 인연이 닿아 나는 3월 4일 부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부탄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라는 철학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둔 나라다. 이곳에서는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ㆍ사회적 안정이 우선이고, 공동체 중심의 삶과 불교적 값어치가 일상 곳곳에 스며 있다. 그리고 실제로, 부탄은 매우 낮은 범죄율을 자랑한다. 이 모든 조건이 맞물리면서 “죄인이 없는 나라”라는 인상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부탄에도 형법이 있고, 경찰과 법원, 그리고 교도소도 존재한다. 드물지만 절도, 가정 폭력, 음주운전, 밀수, 심지어 살인도 존재한다. 인도와 국경을 맞댄 지역에서는 마약 문제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수도 팀푸를 포함해 몇몇 지역에는 실제 교도소도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부탄을 ‘죄인이 없는 나라’로 기억하는가?

그 핵심에는 불교적 세계관이 있다. 부탄 사회는 ‘죄인’을 업(業, karma)의 희생자로 바라본다. 그들은 단순히 처벌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잘못된 업의 결과를 겪고 있는 중생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교도소의 기능 또한 다르다. 처벌보다 교화와 회복, 그리고 공동체 복귀를 중심에 둔다.

 

부탄의 교도소는 수행 도량에 가깝다. 수감자들은 날마다 명상과 기도, 촛불 공양과 만트라 염송(불교나 힌두교에서 기도 또는 명상 때 외우는 주문)에 참여하며, 라마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닦는다. 수공예와 농업 등 직업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교정보다 정화에, 감금보다 갱생(更生)에 방점이 찍혀 있다. 여기엔 부처의 자비심이 녹아 있고,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선하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믿음으로써 인성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탄에는 죄인이 없다”라는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부탄은 범죄자를 ‘범죄자’로 끝내지 않는다. 그를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쓴다. 이 철학이 이방인의 눈에는 ‘죄 없는 사회’로 비치게 한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왜 우리는 날마다 더 끔찍한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가?삶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정신은 텅 비고 마음은 메말라 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고도화된 문명 속에서, 우리는 정작 ‘사람다움’을 놓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부의 정책이, 교육이, 교도소의 교정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원활하게 정화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지금처럼 간다면 답이 없다. 문화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법죄가 지능화하고, 지도 계몽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요구되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 변화와,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철학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해본다.

 

나 하나의 변화, 내 가족, 내 공동체에서의 회복이 부탄 같은 사회를 향한 첫걸음일지 모른다. 아니다. 먼 옛날이 아니라 50년 전만 되돌아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각박하지는 않았다. 부탄은 우리나라 현 생활을 50년 되돌린 상태로 보면 될 것 같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조그마한 이익을 놓고 칼부림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친분을 떠나 말 한마디 잘못하게 되면 바로 강력한 타격이 온다. 이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예전에는 짐승이 무서워 조심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사람 무서워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시대인 것 같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용광로처럼 뜨겁게 분출되는 욕망을 억제하고 잠재울 수 있다면 어딘가에는 우리 사회가 교도소가 있어도 죄인이 없는 맑은 시대가 오리라는 간절한 희망을 기대해본다. 그 소망이 나를, 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일취스님(철학박사) cleanmind300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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