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가, 산문체의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짜인 노래

  • 등록 2025.10.14 11: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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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5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갈량(諸葛亮)을 주제로 하는 <공명가(孔明歌>를 소개하면서 왜 이런 노래들을 <잡가>라 불러왔는지?, 또한 산조(散調)음악도 ‘헛튼 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 했는데, 왜 산조를 그렇게 불렀는지를 얘기하면서 경서도 음악의 극치라고 평가되는 맑고 고운 노래들을, 잡가(雜歌)라 부르는 것은 당치 않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도의 대표적인 좌창, <공명가>를 소개한다.

 

정가(正歌)를 비롯한 판소리가 그러하듯 경서도 지방에서 널리 불려 온 좌창(坐唱)도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소리만을 듣는다면 별반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사설의 이해는 우선 되어야 한다.

 

공명가의 주된 내용은 조조와 대치하고 있는 공명이 오(吳)의 주유와 함께 전략을 논의하는 데 있어 화공(火攻)이어야 승산이 있다는 점에 공감하게 되지만, 겨울철에 동남풍(東南風)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모두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공명이 선뜻 나서서 산에 올라가 동남풍이 불어오도록 하늘을 움직였다는 내용의 노래다.

 

<공명가>에서 파생된 노래로는 ‘사설공명가’, ‘별조공명가’ 등도 있지만, 전해오는 말로는 <공명가>를 주로 많이 불렀다고 하며 다음으로 ‘별조 공명가’도 불러 왔다고 하나, ‘사설공명가’는 초보자들이 처음 노래를 배울 때, 기초 과정처럼 익혔다고 하는 곡이다.

 

공명이 신통력으로 동남풍은 불어오게 하였지만, 그의 이러한 능력이 훗날에는 여러 나라, 여러 사람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것으로 판단하여, 동지였던 주유가 공명을 해칠 계책을 세우지만, 결과를 미리 예견한 공명은 몸을 피해 무사히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공명가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이어가는 노랫말의 내용도 놓칠 수 없거니와 그 가사 위에 얹혀 진행되는 특유의 가락 전개나, 언제 들어도 호쾌한 ‘엮음수심가’ 조가 중심을 이루는 창법, 그리고 변화무쌍한 장단의 전개 등등, 각각의 음악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이 노래의 시작부분은 다음과 같다.

 

“공명이 갈건야복(葛巾野服-갈포로 만든 두건과 베옷, 은사의 의관)으로

남병산 올라 단(壇) 높이 모으고 동남풍 빌 제,

동(東)에는 청룡기(靑龍旗-푸른 용을 그린 깃발)요.

북(北)에는 현무기(玄武旗-검은빛의 군기)요,

남(南)에는 주작기(朱雀旗-붉은 공작을 그린 깃발)요.

서(西)에는 백기(白旗-흰 깃발)로다.

중앙에는 황기(黃旗-노란 깃발)를 꽂고, 오방(五方)기치를

동서사방으로 좌르르 벌리어 꽂고, 발 벗고, 머리 풀고,

학창흑대 띠고 단(壇)에 올라 동남풍 빌은 후에,

단하(壇下)를 굽어보니 강상에 둥, 둥, 둥, 둥, 떠오는 배,

서성(徐盛-오(吳)의 장수), 정봉(丁奉-오의 장수)의 벤 줄로만 알았더니,

자룡(子龍-이름은 운(雲), 촉한의 장수)의 배가 분명하구나.

즉시 단하로 내려가니, 자룡 선척(배)을 대하였다가 선생을 뵈옵고

읍하는 말이, “선생은 체후일향(體候一向) 하옵시며

동남풍 무사히 빌어 계시나이까?,

동남풍은 무사히 빌었으나 뒤에 추병이 올 듯하니,

어서 배 돌리어 행선을 하소서.” (아래 줄임)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서성의 의미있는 자탄이 인상적이다.

 

“한종실(漢宗室) 유황숙(劉皇淑-성은 유, 이름은 비(備), 자가 현덕(玄德). 헌제에게 숙행이 되므로 유황숙으로도 칭함. 얼굴은 관옥 같고, 키는 8자, 손이 무릎을 덥고, 두 귀가 어깨에 닿아 자기의 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인물)은 덕(德)이 두터워 저런 명장을 두었건만, 오(吳)왕 손권은 다만 인자(仁慈)뿐이라. 천의(天意)를 거역치 못 하여 나는 돌아만 가누나”

 

공명가는 장별의 구분이 없는 산문체의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짜여져 있으며 선율형의 특징은 부분 부분의 진행이 힘찬 고음에서 저음으로 연결되는 하행(下行)선율형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창법은 내지르는 목청이 격렬하고 강약(强弱)의 대비가 뚜렷한 <엮음수심가>의 창법이 활용되면서 서도창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뻗는 대목에서는 살짝 떨어주며 내는 요성(搖聲)의 창법이 독특한 편인데, 이렇게 폭을 좁혀가면서 격하게 떨어주는 <조는 목>, 또는 <졸음 목>의 표현으로 인해 더더욱 긴장감을 주고 있다.

 

장단은 3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가사에 따라서는 4~5박 등으로 변하기도 하여 불규칙하며 선율 진행에 따라서는 1박 내에 다음절(多音節)이 자주 나타나는 서사적인 서도창이다,

 

이 노래에 관해, 서도 소리꾼 박기종은 “극적 구성이나 내지르는 목청이 격렬하고, 강하게 뻗는 대목에서는 살짝 떨어주는 요성이라든가, 졸음목, 새김목을 동시에 써서 부르는 <엮음수심가>의 기본 창법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지략이 뛰어난 공명의 활약성과 조자룡의 용맹성 등이 가사 내용에 잘 나타나 있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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