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은 생체시계와 어긋난다

  • 등록 2025.11.22 11:07:55
크게보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2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프랑스의 천문학자 마랑(Mairan)은 18세기 초에 미모사(콩과의 한해살이풀)를 키우다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창가에 둔 미모사가 늘 같은 시간에 태양을 향해 잎을 여는 것이었다. 빛의 영향일까? 마랑은 미모사를 캄캄한 방안에 갖다 놓았지만, 여전히 미모사는 아침마다 잎을 열고 저녁에는 닫았다. 그는 1729년에 파리 과학아카데미에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처럼 식물도 밤낮을 느끼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것 같다.” 마랑의 생체시계 발견은 다른 식물에서도 관찰되었고, 동물에서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연구되었다.

 

인간의 몸에도 생체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시도한 실험을 통해서였다. 사람을 어두운 지하 창고에 살게 하고 행동을 조사한 결과, 밤낮을 모르는데도 거의 24시간 간격으로 잠을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한 것이다. 외부 빛과 상관없이 우리 몸에서는 자발적으로 생체시계가 작동해 우리 몸을 조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두 눈의 뒤쪽 뇌 가운데에 자리 잡은 시신경 ‘교차상핵(SCN)’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 생체시계는 약 2만 개의 신경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밤에는 잠을 깊이 자도록 하는 메라토닌 호르몬을 분비하고 낮에는 분비를 중단한다. 생체시계는 잠자는 시간 외에도 체온, 호르몬 분비량, 심장 박동수, 호흡수 등 바이오리듬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세 사람 제프리 홀ㆍ마이클 로스배시ㆍ마이클 영(모두 미국 국적)은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분자 메카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들은 초파리를 연구하여 생체리듬을 통제하는 유전자를 분리하고, 이 유전자가 암호화하는 단백질이 밤에 축적되고 낮에 분해되는 방식으로 세포 내에서 진동하는 일주기(日週期)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한 것이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사람마다 약간씩 다른데 노력과 의지로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이른바 ‘저녁형 인간’에게 왜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느냐고 야단치는 것은 곱슬머리에게 왜 너는 곱슬머리가 되었느냐고 야단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체질의 차이는 무시하는 대신 인정해 주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근래에 우리가 느끼는 매우 편리한 서비스가 택배이다. 특히 2014년에 도입된 새벽 배송은 소비자 처지에서는 매우 편리하지만, 택배 노동자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다. 택배 노조에서는 택배노동자의 과로 방지와 건강권 확보를 위해 심야인 밤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에는 배송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가칭 ‘새벽 택배 금지법’은 여당에서 발의를 검토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두 가지 이유를 들면서 반대하고 있다. 첫째, 이미 국민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새벽 배송을 하루아침에 금지하는 것은 국민 편의를 외면하는 행위이다. 둘째, 일부 택배 기사들은 높은 수입을 위해서 새벽배송을 선택하는데 이를 금지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의 야간 근무를 하게 되면 통상 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수입을 위하여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체시계를 위반하는 생활을 하면 사람의 몸에는 어떠한 부작용이 나타날까?

 

생체시계는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치는데, 잠이 부족하거나 불규칙하면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렙틴 조절이 잘 안된다. 이 탓에 자주 허기지고 궁극적으로는 몸무게가 늘어나게 된다. 우리가 생체시계와 맞추어 생활하지 않으면 비만 말고도 불면증, 우울증, 소화불량, 암 등 각종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에 “생체시계 교란은 암과 대사질환 발병의 위험 요인”이라고 공인하였다.

 

새벽 배송 금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가? 새벽 배송 이용자의 98.9%는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93%가 새벽 배송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반 여론이 매우 팽팽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여 다수결로 결정할까?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새벽 배송이 택배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다면 선택은 분명하지 않겠는가? 나의 편리함이 다른 사람의 건강에 피해를 준다면 나의 편리를 자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필자는 이 속담을 아주 오래전에 들어서 알고 있다. 젊었을 때는 이 속담의 깊은 뜻을 잘 몰랐다. 그러나 현직에서 은퇴한 지가 10년을 지난 요즈음 본의 아니게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잦아진다. 아래 속담은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