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은 김삿갓 말고 여성 김금원도 있다

  • 등록 2025.10.16 11: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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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터울의 두 사람, 같은 주막에 묵었을 수는?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53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같은 시기 여성 김삿갓이 있었고 그녀가 여행기를 남겼다는 사실은 왜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는지. 14살 때 길을 나선 남장 소녀의 이름은 김금원(金錦園, 1817~?). 조선 후기를 살았던 두 사람은 꼭 열 살 터울이다. 김삿갓은 스무 살 때 집을 나왔다고 하니 1827년 무렵이다. 금원이 집을 나선 것은 1831년이라 하니, 김삿갓 보다 4년 늦게 집을 나선 셈이다. 이 두 남녀의 여정이 교차했을 수도 있을지, 혹 어딘가에서 같은 주막에 묵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만일 두 사람이 같은 주막의 마루 위에서나 어떤 마을의 정자에서 서로 시를 겨루었다면 어떤 작품들이 나왔을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금원의 여로를 한 번 짚어 본다. 그녀의 여행은 14살 소녀 때부터 시작하여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시간 간격을 무시하고 여정을 모두 이어보면 다음과 같다:

 

제천-단양-영춘-청풍-(아래 내금강)

단발령-장안사-표훈사-만폭동-수미탑-중향성-불지암-묘길상-지장암-사자암-(아래 외금강)

유점사-구룡소-은선대-십이폭포-(아래 관동팔경) 통천 총석정-해금강-고성 삼일포-간성 청간정=강릉 경포대-울진 망양정-평해 월송정-삼척 죽서루-인제 설악산-백담사-(아래 한양)

남산- 세검정-삼청동-숭례문-(아래 북녘)

개성-평양-의주-압록강- 구련성-국경도시들(22~24살)

 

 

이제 두 남녀의 글을 감상해 보자.

 

먼저 김삿갓의 삿갓시

 

浮浮我笠等虛舟  내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

一着平生四十秋  한 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

牧竪輕裝隨野犢  목동이 걸치고 송아지 몰며

漁翁本色伴沙鷗  어부는 그저 갈매기와 노닐지만

醉來脫掛看花樹  취하면 걸어두고 꽃 구경

興到携登翫月樓  흥이 나면 벗어 들고 달 구경

俗子衣冠皆外飾  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 체면치레

滿天風雨獨無愁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내사 아무 걱정 없네

 

다음은 금원의 여행기 첫머리다.

 

“천하 강산은 크고, 고금 세월은 오래구나. 인간사 가고 옴은 무상하고, 만물은 형형색색 서로 같은 것이 없구나. 산은 본래 하나이나 끝내 만 가지로 흩어져 수많은 다른 산이 있고, 물은 본래 만 줄기이나 끝내 하나로 모여 만경창파를 이룬다. 하늘을 날고 물에 잠겨 있는 뭇생물의 기이한 형상의 같고 다름이 조화의 자취 아님이 없다.

 

사람은 음양과 오행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 만물 중 가장 뛰어나지만, 남자와 여자가 같지 않고, 재주와 기운에 높고 낮음이 있으며, 지식과 도량에 크고 작음이 있고, 무릇 장수와 요절, 빈곤과 부유함이 또한 같지 않다. (…)

 

때를 만나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에게 은혜를 끼쳐 이름을 역사에 드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을 잘못 만나 옥같이 아름다운 재주를 지니고도 초목과 더불어 썩어간 사람도 있다.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고, 절의와 협기로 알려지기도 한다. 높은 뜻을 품은 채 산천을 방랑하기도 하고, 세상일은 저버리고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는 것은 대체로 다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불우한 사람들이 우울한 심사를 달래려는 것이다.

 

눈으로 산하의 큼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사물의 많고 많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치를 통달할 수 없어 국량(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이 협소해지고 식견이 열리지 못한다. (…) 여자는 발이 규방 밖을 나가지 못하고 오직 술 빚고 밥 짓는 것에 묶여 있어야 한다. (…) 규중 깊은 곳에서 그 총명과 식견을 넓힐 수가 없어 끝내 묻힌다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 다음으로 이어진다

 

 

 

 

김선흥 작가 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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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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