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시사 합작시 51. 고구려의 산성과 요샛길

  • 등록 2025.12.07 11: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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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구려의 산성과 요샛길

 

     풀섶에 서린 주몽의 발자취 (빛)

     여기도 전쟁은 스쳐 갔으리 (돌)

     북소리 말발굽 소리 들리듯 (달)

     달빛 속에 개구리 개골개골 (심)

                              ... 24.11.11. 불한시사 합작시

 

 

 

 

 

불한시사의 고구려 유적 답사 여정은 국내성과 환도성을 품은 집안에서 시작되어 통화(通化)를 향해 나아갔다. 오녀성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끝내 마음에 남았다. 늦가을 산은 이미 입산금지령으로 닫혀 있었고, 우리는 그 산허리에 잠든 세월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유하(柳河)에서의 하룻밤을 지나, 우리는 고구려의 옛 성곽이 온전히 남아 있는 라통산(羅通山)의 능선을 올랐다. 사방이 탁 트인 일망무제의 요새 위에서 바라다본 옛 고성(古城)은 놀라우리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산정의 사방을 따라 성채가 둘러 있고, 병영의 훈련장과 지휘부의 집터, 그리고 말 먹이던 연못까지 그 시대의 숨결을 지닌 채 고요히 남아 있었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산성 안에는 도교의 도사들이 머무는 도관(道觀)이 자리하고 있었고, 먼 옛 장수들의 숨결과 새 주인들의 청정한 기운이 한자리에 어우러져 묘한 정취를 이뤘다.

 

국내성을 뒤로하고 통화를 향해 가는 길, 우리는 고구려 군사들이 오갔던 깊은 계곡을 따라 걸었다. 출병과 회군의 길이자, 고구려의 비밀 요새였던 그 고도(古道)는 계절의 그림자를 얹은 채 우리 앞에 펼쳐졌다. 늦가을 개구리 울음소리마저 사라진 적막한 골짜기였으나, 어딘가에서 말발굽 소리가 되살아 오는 듯하였다. 여위어 흐르는 물소리와 스산한 가을빛이 겹치면서, 잃어버린 강토에 대한 회한이 우리 답사객들의 가슴속으로 천천히 번져왔다.

 

위의 시는 바로 그 순간의 감응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고구려의 요샛길을 걸으며, 우리는 땅과 바람과 돌에 남아 있는 옛 제국의 숨결을 들었다. 주몽의 발자취가 스민 풀섶과, 전쟁의 기척이 스쳐 간 계곡, 그리고 달빛 아래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소리. 그 모두가 고구려의 영혼을 되살려 우리의 마음을 오래도록 울렸다. (라석)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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