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조원의 씨앗, 우리 앞날을 '가멸게' 꽃피우길

  • 등록 2025.12.11 1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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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가멸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밤새 도둑비가 내렸습니다. 길은 젖었고 하늘은 여전히 흐립니다. 어제보다 포근한 날씨지만 바람은 서늘합니다.  오늘 아침, 추위를 살짝 잊게 할 만큼 뜨거운 기별이 들려왔습니다. 정부가 우리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 그 가운데에서도 설계를 맡은 분야를 키우려고 무려 70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입니다.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무지고 올찬 앞생각(계획)을 보니, 우리 앞날이 오늘보다 훨씬 넉넉해 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가멸다’입니다.

 

‘가멸다’라는 말, 어딘가 낯설면서도 소리 내어 읽으면 입안에 꽉 차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말은 ‘재산이나 살림살이가 넉넉하고 많다’는 뜻을 지닌 그림씨(형용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부유하다’나 ‘잘산다’는 말과 비슷하지만, 토박이말이 가진 구수하고도 수수한 맛이 살아있는 낱말이지요.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이 잘 살기를 바라는 대목에서 힘 있게 쓰였습니다. 김동인 님의 소설 <운현궁>을 보면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다짐하는 대목에서 이 말이 나옵니다.

"이 나라로 하여금 굳센 나라가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하여금 가멸 백성이 되게 하고..."

 

"가멸 백성이 되게 하고..." 이 대목을 읽으니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나요? 그저 배를 불리는 것을 넘어, 백성의 삶이가 옹골차고 넉넉해지기를 바라는 이끔이(지도자)의 그윽한 바람이 ‘가멸다’라는 낱말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가멸'을 오늘날 맞춤법에 따르자면 '가면' 또는 '가멸은'으로 쓸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멋진 말을 우리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본 기별에 나온 말부터 쉽게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700조 투자로 반도체 초격차 전략 시동"과 같은 거친 말 말고, "700조 원을 들이는 것은 곧 다가올 앞날에 우리가 누구보다 ‘가면/가멸은’ 자리를 꿰차겠다는 굳센 다짐입니다"라고 바꿔보면 어떨까요? 살벌한 다툼보다는, 우리가 가진 솜씨의 집을 넉넉하게 채우겠다는 믿음이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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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에도 이 말을 써보세요. 해끝을 맞아 동무에게 "새해엔 부자 되세요"라고 흔하게 말하기보다, "새해에는 돈자리(통장)도, 마음도 훨씬 더 가면/가멸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건네는 겁니다. 듣는 이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채워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또,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좋습니다. 땀이 흐르는 얼굴, 빽빽하게 적은 공책을 찍어 "오늘 흘리는 이 땀방울들이 모여, 뒷날 내 삶을 가멸게 만들어 줄 거라 믿습니다."라고 적어보세요. 몬(물질)뿐만 아니라, 꿈을 좇아 나아가는 마음의 넉넉함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과 솜씨로 가멸어지고, 우리네 삶은 사랑과 웃음으로 가멸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마음속 집에도 기쁨이 ‘가멸게’ 차오르기를 바랍니다.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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