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하루하루 시나브로 해끝으로 가고 있는 요즘, 거리마다 따스한 마음을 올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조임이 갈마들곤 합니다. 오늘 들려오는 나라 밖 기별도 우리 마음을 사뭇 무겁게 하네요. 일본이 금리를 올렸다는 기별에 온 누리가 술렁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공포'나 '잠재된 위험' 같은 딱딱한 한자말들이 가득한 기별을 읽다 보면, 우리 삶의 터전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이런 마뜩잖은 마음의 결을 살피다 보니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바로 '도사리다'입니다. 이 말을 보고 뱀이 몸을 사리고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지 싶습니다. '도사리다'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는데 그 가운데 "장차 일어날 일의 기미가 다른 사물 속에 숨어 있다"는 깊은 뜻도 품고 있지요.
이 말의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맛이 더 살아납니다. '도사리다'는 앞서 말했듯이 뱀 같은 옮살이(동물)가 몸을 둥글게 감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튀어 나갈 갖춤(준비)을 마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됨새를 말하지요. 그래서 '잠재해 있다'는 말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생생하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이어줍니다.

이 말도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에서 자주 썼을 것 같은데 오늘 알려 드리는 뜻으로 쓴 대목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음이(작가)가 되어 이 말을 쓴다면 이렇게 나타내 보고 싶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 밑에는, 보드라운 흙을 뚫고 올라올 봄꽃들의 외침이 도사리고 있었다." 흔히 쓰는 꽃이 필 준비를 한다는 말보다, 땅 밑에서 숨죽이며 터져 나갈 때를 기다리는 힘이 더 세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이 말을 우리 나날살이(일상생활)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아침 기별종이(신문)에서 본 어려운 살림(경제) 이야기를 토박이말로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일본의 금리 올림(인상)이라는 큰 물결 뒤에는, 싼값에 빌린 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커다란 숨은바위(암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훨씬 더 묵직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걱정이 많은 동무에게 "네 마음속에 도사린 걱정을 너무 미워하지 마. 그만큼 네가 삶을 값지게 여기고 있다는 거니까"라고 살가운 말을 건네보세요. '불안해하지 마'라는 흔한 말보다 동무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참마음이 더 잘 이어질 것입니다.
눈 내리는 겨울 바람빛(풍경)을 찍어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써 보세요. "하얗게 덮인 눈 아래 봄을 기다리는 새싹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네요. 겉은 차가워 보여도 속은 참 뜨거운 겨울입니다."라고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차분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비롯(시작)만큼이나 종요로운 것이 마무리입니다. 한 해를 매조지는 이 값진 때에,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것이 마뜩잖음이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는 단단한 바람(희망)이기를 바랍니다. 헐거워진 마음의 끈을 다시 묶으며, 오늘 하루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떤 아름다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