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로고스 로펌 창립 25돌 기념식 때 당첨된 행운권으로 산 책에는 《페이크와 팩트》 외 《지구의 미스터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김종태 작가가 지구의 미스터리를 모아서 펴낸 책인데, 지구 생성 이전의 태양계 형성부터 시작하여 기이한 기상현상, 기이한 식물과 동물, UFO 현상 등 지구에 관한 미스터리가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김종태 작가는 전문학자도 아니면서 이러한 미스터리 현상에 관심이 많았던지, 작가는 이 책 이전에도 《달의 미스터리》, 《화성의 미스터리》 등의 책을 냈습니다. 책에 나오는 많은 미스터리 어느 것 하나 흥미를 끌지 않는 것이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거석문화 편의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에 대해서 얘기해 보렵니다.
‘괴베클리 테페’는 터키 동남 아나톨리아 지역의 해발 760m 높이의 고원에 있는 유적으로, 약 200개에 달하는 돌기둥들이 20여 개의 원을 이루고 있는 유적입니다. 그러나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현재까지 15% 정도밖에 발굴하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 유적은 1963년 이스탄불 대학과 시카고 대학의 합동 조사로 처음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비잔틴 시대의 무덤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조사가 미뤄지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1994년에 클라우스 슈미트가 시카고 대학의 보고서를 읽다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껴, 독일 발굴팀을 이끌고 1996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을 하였습니다.
발굴 결과, 각각의 기둥은 높이는 대략 6m이고 무게는 20톤 정도 나가고, 여우, 전갈, 사자 등 여러 형상이 조각된 기둥들이 많았답니다. 그리고 유적은 어떤 신전이나 제식용 장소로 추정됩니다. 이 정도 말하면, ‘뭘 그 정도로 기이하다고 놀라냐?’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 정도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유적의 건립 시대가 저를 놀라게 한 것입니다. 이 정도 말씀드리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영국의 스톤헨지만큼 오래된 유적인가 보구나’라고 또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스톤헨지보다 무려 7,000년 앞선 기원전 10,000년경의 유적입니다.
이 시대이면 인간은 아직 가족이나 친족 단위의 소규모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하거나 야생동물을 사냥하며 떠돌이 생활을 할 때입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제식용 유적이라고 하였는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통념은 제식용 유적은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곧, 인간은 농사를 지을 줄 알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정착집단은 점점 커집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위계질서가 생기고, 지배자와 피지배집단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지배자는 자기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으로 신을 찾고, 그게 종교로 발전하면서 신전을 비롯한 여러 종교적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 채집생활 단계에 있을 때 이런 대규모 제식용 유적이라니요?
그리고 무게가 20톤이나 나가고 심지어는 어떤 거석은 50톤 이상 나간다는데, 그동안의 통념으로는 이런 대규모 유적은 대규모 집단이 모여야 하고, 또 강제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배계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소규모 채집경제 시대에 그런 유적이라니요? 설사 대규모 집단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기원전 10,000년경에 이런 커다란 돌로 신전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이런 점에서 ‘괴베클리 테페’ 미스터리가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입니다. 이런 미스터리에 대해 학자들의 추측은 이렇습니다. 곧, 인간의 종교적 관심은 그 당시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그 당시라면 인간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사냥하는 것이며, 실제로 사냥하다가 오히려 맹수에게 잡아먹힌 인간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냥에서 안전을 갈구하고, 사냥물을 많이 잡기를 원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희망이 신을 찾았을 것입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나 라스코 동굴 벽화가 다 이런 기원을 담아서 그려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런 종교적 염원으로 ‘괴베클리 테페’에 모여 신전을 만들고, 이곳에서 하늘에 비는 의식을 집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는 아직 떠돌이 생활을 할 때라, 사람들은 1년 중 정해진 시기에 이곳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필요를 강하게 느꼈기에 이곳에 모인 모든 집단이 힘을 합쳐 이런 거석을 운반해 와 신전을 만든 것입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제작한 때를 기원전 17,000년 내지 15,000년으로 보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은 각자 동굴에 벽화나 그리는 정도로 기원을 하다가, 기원전 10,000년경에 이르러서는 모든 집단이 이곳에 모여 ‘괴베클리 테페’ 유적을 만든 것입니다.
이 정도 모여서 신전을 만들었다면 실제 그때부터 이곳에서 집단생활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주거생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수많은 야생동물 뼈, 특히 가젤의 뼈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양의 야생동물 뼈가 남아있다는 것은 당시에는 아직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기원전 만 년 전에 인류가 이런 큰 신전을 지을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네요. 그래서 어떤 고고학자는 ‘괴베클리 테페’ 건축을 스위스 칼을 가지고 달나라에 갈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과 비유할 정도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제 머릿속으로는 ‘괴베클리 테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경건하게 예식을 드린 뒤, 광란의 축제를 즐기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당시 원시인들은 이렇게 제사와 축제를 벌임으로써, 1년 동안 생존을 위한 두려움, 피곤함 등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년 뒤를 기약하며 목숨을 건 생존현장으로 떠나갔을 것입니다. ‘괴베클리 테페’! 지구의 미스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