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는 '노느매기'의 힘

  • 등록 2025.12.26 12: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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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노느매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갑작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기별이 들렸습니다. 한뉘(평생) 한약방을 꾸리며 번 돈을 아낌없이 배움이와 이웃에게 내어주셨던 진주의 큰 어른, 김장하 스승님의 이야기입니다. 스승님께서 꾸리시던 옛 '남성당 한약방'이 고장 사람들의 배움터인 '교육관'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바라는 것 없이 베푼다는 뜻을 이어받아, 이제는 집마저 내어놓으신 스승님의 삶을 보며 저는 문득 '기부'나 '나눔'이라는 말보다 더 깊고 튼튼한 우리말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 '노느매기'입니다.

 

'노느매기'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여러 몫으로 갈라 나누는 일, 또는 그렇게 나누어진 몫'이라고 풀이를 합니다. 이 말은 곰곰이 뜯어보면 볼수록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옛말에 '나누다'는 뜻을 가진 '놀다'의 끝바꿈꼴(활용형)인 '노느'에, 몫을 정한다는 뜻의 '매기다'에서 온 '매기'를 더한 말이지요. 그저 가진 것을 뚝 떼어 주는 게 아니라, 너와 내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몫을 살피고 고루 나눈다는 동아리(공동체)의 따뜻한 마음이 이 낱말 속에 오롯이 배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살가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빛나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맑고 고운 우리말을 즐겨 쓰셨던 소설가 박완서 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송편 보따리를 끌러 두 집이 공평하게 노느매기를 하면서, 작은숙부 내외가 큰숙모의 노고와 솜씨를 찬양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명절날 송편을 나누는 바람빛(풍경) 속에 '분배'라는 딱딱한 말 을 갈음해 '노느매기'가 들어가니, 떡을 나누는 손길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김장하 스승님게서 보여주신 이 아름다운 '노느매기'의 얼을 우리네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딱딱한 기별 속 말부터 부드럽게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김장하 선생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마르고 거친 말을, "스승님께서는 한뉘 일군 삶의 열매를 이웃들과 기꺼이 노느매기하셨습니다"라고 적어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 베푸는 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려고 서로의 몫을 챙기는 사랑임이 더 잘 드러날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에서도 이 말을 써보세요. 혼자 힘들어하는 동무에게 "내가 좀 도와줄게"라고 말하기보다, "우리 그 짐, 같이 노느매기해서 지자. 그러면 훨씬 가벼울 거야"라고 건네는 겁니다. 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릴 때도 좋을 것입니다. "올겨울엔 내 마음을 이웃과 노느매기하며 따뜻한 해끝을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적어보세요. 읽는 이들의 마음 한구석까지 훈훈해질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몫을 챙겨주는 마음, 그것이 바로 '노느매기'입니다. 김장하 스승님이 남성당 한약방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내 것을 조금 덜어 너의 몫을 채워주는 그 '노느매기'였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누구와 무엇을 노느매기하고 싶으신가요?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따뜻한 눈빛 하나, 살가운 말 한마디라도 이웃과 나누며 서로의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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