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 등록 2026.01.17 11: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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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그 겨울의 시>
​[겨레문화와 시마을 233]

[우리문화신문=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며칠 뒤면 한 해 가운데 가장 춥다는 절기 ‘대한(大寒)’이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는데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 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은 싸늘하게 식었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곤 했다. 아침 녘 일어나 보면 자리끼로 떠다 놓은 물사발이 꽁꽁 얼어있고 윗목에 있던 걸레는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지난 경진년ㆍ신사년 겨울에 내 작은 초가가 너무 추워서 입김이 서려 성에가 되어 이불깃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나의 게으른 성격으로도 밤중에 일어나서 급작스럽게도 《한서(漢書)》 1질을 이불 위에 죽 덮어서 조금 추위를 막았으니, 이러지 아니하였다면 거의 묏자리 귀신이 될 뻔하였다. 어젯밤에 집 서북 구석에서 독한 바람이 불어 들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노론(魯論)》 1권을 뽑아서 바람을 막아 놓고 스스로 변통하는 수단을 자랑하였다.” 이는 이덕무가 자신의 책 《청장관전서》에서 말한 얘기다. 이덕무는 옛사람이 금은 비단으로 이불 해 덮은 것보다 책으로 해 덮은 나의 이불이 낫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게 이불 위에 책을 덮어서 겨울을 난 선비도 있었다. 그런데 시인 박노해는 그의 시 <그 겨울의 시>에서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가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단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의 토끼들까지 어떻게 겨울 날 것인지 걱정했다고 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에 우리 겨레는 자리끼에 떠 놓은 물에 살얼음이 어는 한겨울도 쉽게 날 수 있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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