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립운동가, <오기호・이기・홍필주>

  • 등록 2026.02.02 11:41:21
크게보기

의열투쟁으로 전환, ‘을사오적 처단’ 계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였던 오기호(1962년 독립장), 이기(1968년 독립장), 홍필주(1990년 애국장) 선생을 ‘2026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이에 전국적 의병 봉기 등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이 격화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정부와 정계 인사에게 장서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성토하고 대한제국의 주권 보전을 요구하는 등 외교적 대응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의열투쟁으로 전환되었다.

 

 

오기호(1865년∼1916년) 선생은 을사늑약 강제 체결 이후 외교적 저항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 조직을 주도하여 폭탄과 저격 등을 통한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였고, 자금 조달과 무기 구입 등을 직접 관장하였다. 이후에도 계몽운동, 실업교육, 대종교 참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독립운동을 실천하였다.

 

이기(1848년∼1909년) 선생은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대일 외교활동 이후 자신회에 참여, ‘자신회 취지서’를 작성하여 을사오적 처단이 민족 해방을 위한 정치적 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자현장(自現狀, 스스로 출두하며 쓴 글)’을 작성하여 법정에서 의거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후에도 교육ㆍ계몽운동과 대종교 참여 등으로 독립운동의 기반 확립에 이바지하였다.

 

홍필주(1857년∼1917년) 선생은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등 일본 침략에 맞선 저항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이기와 함께 도쿄에서 외교 활동을 전개하며 을사늑약 저지를 시도하고, 을사오적 처단 계획에 참여하였다. 또한, 대한자강회ㆍ대한협회 등을 조직하여 계몽ㆍ교육운동에 헌신하였다.

 

 

을사오적 처단 계획은 성공하지는 못하였으나, 구국운동의 방략이 외교에서 의열, 다시 정신운동으로 전환ㆍ확장되는 분기점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오기호, 이기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홍필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편집고문 서한범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