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 정월 대보름굿 참가기

  • 등록 2003.03.11 07:27:26
크게보기

※ 이 글은 오랜동안 풍물굿에 심취해 많은 이들이 풍물의 철학을 체득해주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노력해 온 한 풍물꾼의 대보름굿 참가기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론 풍물의 의미, 풍물이 나아갈 바를 조목조목 꼽 씹어보는 소중한 글이라 생각하여 여기에 올립니다.(지킴이 주) ------------------------------------------------------------------------------- 계미년 정월 대보름굿 참가기 문 찬 기 눈을 떠보니 아침 6시 반. 오늘은 정월 대보름굿을 치기 위해 임실에 가야한다. 기분이 묘하다. 큰 굿이 있을 때면 언제나 전수관에서 아침을 맞곤 했는데 어느덧 나도 이제 굿 있는 날 아침에야 집에서 출발을 한다니... 하지만 나 나름대로는 광주로 한의원을 옮긴 이래로 최초로 임의휴원까지 했다. 어머니가 걱정을 하신다. 그래도 일년에 한번뿐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새벽밥을 먹고 활터에 가서 활 세순 쏘고 부리나케 임실로 향했다. 중간에 소라도 싣고, 순창에 들려 고무신도 구하고^^, 강진에 도착해보니 허수아비가 보인다. ‘허수아비로 이정표를 삼다니 좋은 생각이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 아쉽다 좀 더 크고 눈에 띄었으면... 우리가 굿을 준비 할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 중에 하나가 사소한 부분에 너무 무심한 점이다. 이 허수아비가 조그마하지만 어떤 변화의 시발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어렵게 비탈을 올라 한옥 안마당에 주차를 시키고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상대로 어지러이 벌려진 지난밤 술자리 사이로 순주가 자고 있다. 자봉단 애들을 벌써 일어나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아마 지금쯤 장작을 부리고, 용기를 세우고 있겠지 손님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재훈이 가 왔다. 어깨와 허리가 아프단다. 전에도 아프다 했던 자리인데 전수와 굿 준비로 무리를 해서 다시 통증이 심해진 모양이다. 고생하는 애들을 보고 있으려니 남이 고생해서 차린 밥상에 날름 앉아 밥만 먹는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성이형이 방에 들어 왔다. 인사를 해도 건성이다 뭔가 잔뜩 고민이 들이찬 얼굴이다. 아마 가건물철거문제로 군과 신경전을 벌인 탓이리라. 재훈이랑 지수 아픈데 침을 놔주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찌됐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지. 옷을 갈아입는데 윤미가 들어온다. 딱 보니 분위기가 알콜스럽다. 아니나 지난밤 꽤 마셨단다. 나도 전에는 굿치기 전날부터 그 다음날까지는 계속 취중이었는데... 사실 술기운 없이 12시간 굿 칠려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지난번 추모굿때 한번 겪어봐서인지(술 안 먹고 굿 치는 거) 그리 걱정이 되진 않는다. 옷을 차려입고 순주랑 윤미랑 민정이랑 걸어서 마을로 갔다. 걸어가다 고개를 돌려 선생님 산소가 있는 데를 봤다. '선생님 오늘도 열심히 잘 할 수 있게 저희를 지켜 봐 주실 거죠? ' 금줄 쳐진 당산나무, 음식 차려진 동청마당을 지나 선생님댁을 들어가려는데 진성이형이 오늘 칠 꽹과리가 없덴다. 으이그 여전하다 차에 가 지난주 새로 사둔 꽹과리를 가지고 왔다. 한 상자나 뒤져 샀는데도 소리가 형편없지만 그래도 싼 맛에 샀는데... 역시 싼 게 비지떡이다. 빌려준 나나 빌린 진성이형이나 둘 다 표정이 찜찜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질 잘 내서 써봐야지 뭐. 드디 어 술 한 잔씩 걸치고 기굿을 시작한다. 굿내는 가락 치고 반풍류 가락 내서 원진 잡아 거꾸로(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더니 어럽쇼 기 주위로 세 번 방울진을 감았다 푼다. gm음 이것도 괜찮군. 이윽고 깃대 밑에 술 세 번 붓고 세 번 절하고 신나게 한 번 치는데 쇠소리가 이상해서 보니 벌써 깨졌다. 젠장 처음부터 이게 뭐람.... 당산에 불려가 제상 차리는 거 살피고 있는데 저기서 사람들이 질굿 내며 당산으로 향해 온다. 질굿가락이 늘어지지 않고 척 앵기는 게 오늘은 왠지 굿을 편하게 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질퍽한 당산 앞에서 굿을 친다. 반풍류를 냈다. 빠른 갠지겡으로 돌리고 휘몰이 몰고 된삼채 치고... 한참을 치다가 보니 쇠들 앞에서 경남이형이 징을 들고 왔다 갔다 춤을 추고 있다. 애고 이 양반 징치는 춤태가 이리도 예뻤나? 보리 밟듯이 잘근잘근 땅을 밟으며 고개를 우쭐우쭐 하는데 참 말로 예쁘다. 혼자 보기 아까워 자꾸 옆에 사람들한테 말했다 '와! 이 양반 춤추는 것 좀 봐라 참말로 이쁘다' 역시 우리 가락은 꾹꾹 밟아줘야 이쁘다. 꾹꾹 지려 밟는 발뒤꿈치 힘이 어깨로, 고개로, 손끝으로 실려 어깨가, 고개가, 손끝이 살랑거릴 때가 참말로 이쁘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풍물은 발뒤꿈치로 친다고 그랬나 보다. 거기에 비해 요즘 사람들은 기운이 위로 몰려 있다. 요즘엔 굿판에서도 신명이 나면 손을 위로 쳐들고 흔들어대 굿판이 아니라 락콘서트장 같기도 하다. 하긴 그것 역시 힘 있고 신나 보이긴 한다. 시대가 변해 사람들의 감정표현과 몸짓이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쩌면 그런 격렬한 몸짓을 배경으로 했기에 경남이형의 춤태가 더 이뻐 보인 것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어색한 듯한 이 조화도 싫지는 않다. 신나게 치고 음복하고 샘으로 갔다. 필봉리 샘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쓸쓸함이다. 이제는 수도에 밀려 물을 갈아 치우지 못해 지푸라기와 풀잎만 품고 있는 샘물을 보노라면 도시로 싼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해체 되어버린 우리들의 고향의 현실이 느껴져 쓸쓸하다. 언젠가 본 '브레스드 오프'라는 영국영화에서는 80년대 초 대처리즘의 폭풍에 휘말려 폐쇄되는 탄광촌과 함께 해체되는 마을 브라스밴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평생을 그 밴드의 지휘자로 살던 노인이 폐암으로 콜록이며 탄광을 폐쇄한 대처를 욕하는 장면을 보며 정말 많이 울었다. 아마도 그 순간 마을해체로 흩어져버린 우리들의 마을굿패가, 그걸 지키려 애쓰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라서였으리라. 사실 마을이 없는 마을굿은 무의미하다. 경제력 없는 마을 또한 무의미하다. 진정 마을굿을 살리려면 마을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그래서 사람들이 아늑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마을굿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지자체 단체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농촌을 해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저곡가가 저임금의 바탕이기에 농사는 더 이상 돈벌이가 못되고, 관광사업으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화가 난다. 그래서 자본주의도 싫다. 텔레비전이나 큰 행사장에서 보는 외국 민속공연단을 보면서 진저리 쳐질 때가 있다. 하와이안 발리 댄스단이 와서 엘비스의 노래에 맞춰 그들의 춤을 추는걸 보면서 너무나 서글펐다. 돈에 팔려 싸구려 유랑극단의 공연처럼 연행되는 그들의 '생활'을 보면, 생활의 뿌리가 잘린 채 박제가 되고, 상품이 돼버린 그들의 민속을 보면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항상 불안하다 우리도 저리 되지 않을까 하고... 요즘은 도시에서도 굿을 많이 친다. 굿이란 게 도시에서는 도시굿으로 농촌에서는 농촌굿으로 각자의 환경에 맞게 이루어지는 거지만 어디든 정치나, 경제상황이 안 좋으면 파행적인 행태로 굿판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나 또한 광주에서 굿패를 꾸리고 있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 걸 맞는 마을굿을 치고 싶다. 예전부터,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던 그 예전부터 내가 꿈꾸던 것은 내가 사는 터전에서 하는 동네굿이었다. 나는 필봉에서는 필봉의 마을굿을, 광주에서는 광주의 마을굿을 치고 싶다. 그래서 제발 필봉리 마을에서 마을에도 굿 칠 사람이 많이 있으니 구경이나 하라고 하는 소리도 들어보고 싶다. 농사일로 단련된 굳센 팔다리로 내는 가락에 취해보고도 싶다. 필봉굿이 관광자원이 아닌 마을공동체의 축제이길 빌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촌과 그곳 출신인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이 나라 정책의 변화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필봉굿을 살리고 싶으면 농민운동을 해야 할까보다. 하긴 그때까진 관광자원으로든 뭐든 살아남아야하겠지만...자기의 꿈은 인민공화국이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거지만 그때까진 남쪽의 초코파이를 먹을 수밖에 없다던 JSA
김영조 sol119@hanafos.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