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의 음악에세이 7] 유월에

2013.06.25 17:07:01

죽음은 미움도 사랑도 초월한 신비한 것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음악을 배우러 이태리에 가서 나는 본받을 만한 이태리 사람들의 습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옆집 할아버지와 마을 어귀 공동묘지 앞을 지나게 되었다. 향나무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동묘지를 향하여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하듯이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묘지에 할아버지의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이 묻혀 있겠거니 생각하며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쳤다. 이어서 고등학교 다니는 이웃집 여학생도 그 곳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았다.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묘지를 지날 때 살아생전을 회상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성찰의 시간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여겨졌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이태리에 있어 보니 이태리 사람들은 길을 가다 공동묘지가 보이거나 시내나 고속도로에서 장례차량을 보게 되면 대다수가 성호를 긋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그들이 왠지 모르게 좋아졌었던 기억이 난다.
 
정리해 보면 이태리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데 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죽어서 가장 큰 영광이 영혼은 천당에 가고, 육신은 지상의 가장 성스러운 곳인 성당 안에 묻히는 것을 소망한다. 그리고 그들의 장례미사에는 무거운 레퀴엠(진혼곡)이나 그레고리안 성가 또는 일반 위령성가가 연주된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하여 고속도로를 주행하며 멀리 보이는 이태리 마을들의 구조를 바라보면 성당 옆에 공동묘지가 함께 있는 풍경이 많이 보이고, 오래된 성당 내부에는 벽면이나 바닥에 조각의 형식으로 묘비가 붙어 있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당은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공존하는 경건한 곳이라 하겠다.
 
사실 나 자신도 어려서 동네 과수원 근처 공동묘지는 밤에는 귀신이 나올까 불안하여 얼씬도 못하고 먼 길로 돌아서 다녔었고, 낮에도 마음 졸이며 달음질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는 달라졌지만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길을 가다 장례차량이나 행렬을 보면 재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종교와 문화적 성향이 개인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르기에 함부로 이것이 옳고 더 좋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양구 DMZ에 있는 철모 (사진_하재열)
 
처가집 가는 길에 항상 지나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6월에도 지나다니면서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계신 골짜기를 무겁고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유월.
유월이 오면
그들도 온다

햇살 부서지는
서러운 몸짓으로
떼지어 온다.

와서,
장미넝쿨도 되고
또 더러는
들녘의 이름없는 풀꽃으로 피어

시퍼런 하늘자락 움켜쥐고
흐느끼는 강이된다.
<시. 이상백의 유월에>
 
 
 국립현충원에 묻힌 분들 중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 진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평범했던 분들이 가족, 전우, 나라를 구하려고 소중한 목숨을 기꺼이 내 놓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요, 친구 그리고 지인들이었으리라.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로서 그들의 살아생전에는 어쩌면 못난 아들, 부족한 남편, 반갑지 않은 친구 그리고 동네에서 별로 인정 못 받는 사람일 수도 있었으리라.
이들이 우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한 것이다.
그저 고맙고 죄송할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숭고한 죽음
그래서 죽음은 미움도 사랑도 초월한 신비한 것이라고 했나보다.

 
시인 구상 선생은 <적군 묘지 앞에서 - 초토의 시 8 > 에서 적군과 아군의 관계를 초월한 존재론적인 글로 죽음과 휴머니즘을 말한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6.25 전쟁기념일을 맞이하여 노래시 <유월에> 를 호국영령 추모곡으로 바칩니다.
  듀오아임 노래시 <유월에>  시. 이상백 / 곡. 주세페 김동규 / 노래. 김구미(소프라노)
 
 
 
   
▲ 주세페 김동규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크로스오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www.duoaim.com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98a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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