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키우는 부모 되기

2013.07.23 08:45:42

꿈과 희망이 존중되는 가정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본다. 키가 너무 크다고 일곱 살에 일찍 입학했는데도 나는 항상 맨 뒤에 앉아야 했었다. 글을 몰라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자주하였었고 선생님이 무엇을 얘기하시는지 몰라 초점 없는 눈으로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없어져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고, 그저 조용히 앉아 칠판만 잘 쳐다보면 혼나지는 않는다는 철칙을 잘 알고 지켰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었던 것들은 그림 그리기, 달리기 그리고 교실청소나 운동장에 쓰레기 줍는 것 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를 착한 어린이로 보시고 선행상도 몇 번 주셨다. 5학년이 되니 그제야 서서히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놀이터가 있었던 동네성당에서는 달랐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부터 미사 중에 제대를 오르내리며 부산하였다고 하며 또 덩치가 커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까 우려했던지 성당 유치원 입학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일학교 여선생님을 울릴 정도로 말을 안 듣던 말썽꾸러기였다. 아마도 요즘 같으면 ADHD(집중력장애) 문제아가 틀림없었겠다.
 
중학교에서 제법 공부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고등학교는 4년이나 다녔다. 나의 적성을 모르고 선택한 자연계열이 싫어 인문계열로 바꾸려고 한 해 휴학을 한 것이다. 이때 나의 장래희망도 철학자로 바뀌게 되었다. 이 방황의 시기에 귀동냥으로 배운 클래식기타는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시험 전날 밤에 기타를 치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또 성악을 전공한 누나의 노래를 듣다 보니 음악이 좋아져 학생미사 때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전례봉사를 기꺼이 즐겼다.
 
그러다가 기타를 치고 철학적인 노래를 하는 수도자도 세상에 필요할거라는 생각으로 신학교를 갈까 한때 갈등하기도 했었는데 사나이로 태어나 결혼은 꼭 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포기했다.
 
대학입시에 내가 철학과를 지망하자 다들 말렸다. 철학과 교수가 되는 것은 ‘하늘에 별 달기’ 처럼 힘들며 재물도 따르지 않는 분야이니 인생이 힘들어 질 거라는 충고에 은근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절충한 것이 성균관대학교의 산업심리학과였다. 80년대에 취업도 잘되고 원하면 학자가 될 수 있는 유망한 분야였다. 장학금도 받는 모범생으로 대학에 다니다가 학점이 좋아 3학년 2학기 겨울방학에 이미 학과에서 취업1호가 된 나는 또 다시 일을 저질렀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음대 성악과에 학사편입을 결심한 것이다. 조직 및 경영심리학보다는 음악이나 예술에 관한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아마추어 합창단 실력으로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시도한 학사편입은 모험 자체였고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미달로 경원대에 합격은 했지만 너무나 새로운 길이라 솔직히 막막했다.
 
나의 존재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계속 풀어주었다. 졸업 후 은사님의 권유로 이태리에서 10년 유학한 후 귀국하여 부부가 함께 팝페라-크로스오버 장르의 공연을 하는 예술가로 살고 있다.
   
▲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보여주는 듀오아임의 팝페라공연
 
 
꿈과 희망이 존중되는 가정
 
나의 존재를 찾아 이렇게 방황과 갈등이 많았던 학창시절, 나 자신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어하셨던 것은 무엇보다 부모님이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감선생님이셨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크셨을까. 나중에 들었는데 학부모들 모아놓고 하신 아버지의 아들 진로지도 실패담이 참으로 와 닿는 강의였다고 한다. 어머님은 나의 고교 휴학을 받아주셨고, 외아들의 신부지망도 허락 하셨고, 취업 후 음대 편입도 그리고 유학까지 아들 하나 더 키운다는 셈으로 모두 허락해 주신 참으로 대담한 분이셨다.
 
이제 결혼한 지 15년째, 가끔씩 연년생 두 아들에게 나의 방식을 강요하며 혼내고 있는 내 모습에 내가 당황스러웠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순진하다가도 꾀돌이가 되고, 엉뚱하지만 기특하고, 때로는 기발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동심의 꿈과 희망을 어른의 권위로 여지없이 묵살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가 웃으시며 꾸짖으신다.
 
‘애비 너도 하는 짓이 꼬맹이 애들과 똑같다 !’

나의 부모님은 당신의 꿈과 희망을 자식에게 강요하지 않으셨고, 부족한 나의 엉뚱한 꿈들과 헛된 희망들까지 기꺼이 존중해주시며 비록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기도와 인내로 지켜봐 주셨다. 그 덕분에 이렇게 남들이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라고 불러주는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데 어떤 때는 막막함이 앞선다. 나의 부모님처럼 하기가 쉽지 않음을 항상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술을 택한 나에게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해준 하늘에 정말로 감사 드린다. 아니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도 더 높은 것 같다.
 
 
   
▲ 주세페 김동규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크로스오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www.duoaim.com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98a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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